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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당신의 대학 생활은 맛있습니까?

pencilk 2002. 4. 1. 15:05
"우리 뭐 먹으러 갈까?"
밥 먹을 때가 되면 누구에게나 생기는 이 고민은 송승희(22·이화여대 사회과학부)씨도 예외는 아니다. 메뉴를 선정하는 데 시간을 많이 들이지 않는 학생들도 있지만 그는 신중히 고민해서 선택하는 편이다. "이왕이면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게 좋죠. 게다가 분위기까지 좋으면 더 좋구요." 처음에는 유별나다며 핀잔을 주던 친구들도 이제는 그를 따라 까다롭게 음식을 고르는 '식도락가'가 됐다.

'식도락'이라는 말은 여러 가지 음식을 먹어보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 일을 뜻한다. 여지껏 부유한 사람들만 될 수 있다고 여겨지던 '식도락가', '미식가'라는 말은 실제로는 평범한 단어다. 요즘 음식 하나를 먹는 사소한 일에서도 즐거움을 찾는 자칭 '식도락가' 대학생들이 늘고 있다. 과연 대학생들의 식도락 문화는 어떤 모습일까?


실속파 vs 기분파

대학생들의 식도락 문화에 영향을 미치는 것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음식의 맛, 음식점의 분위기 등도 중요하지만 그 중 가격을 빼놓을 수 없다. 음식의 종류가 많은 만큼 그 가격도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싸면서 맛있는' 음식점을 찾아다닌다. 황인용(21·연세대 의예과)씨는 학교 식당을 주로 이용한다. 이 곳의 가격 대는 1500원과 2200원 두 가지. 가격에 비해 맛도 괜찮아서 공강 시간이나 시간이 별로 없을 때 자주 찾게 된다. "싼 가격에 비해 메뉴가 다양해서 좋아요." 학교 식당 외에도 학교 앞의 음식점에는 실속파 식도락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어경호(21·서울대 공학계열)씨는 비싼 음식점보다는 돈까스, 찌개, 비빔밥 등을 3000원 정도 선에서 먹을 수 있는 분식집을 자주 찾는다. "이왕이면 맛있으면서 가격까지 싸면 더 좋죠." 

한편 조금 비싸더라도 제대로 된 음식을 즐기자는 기분파 대학생들도 있다. 정희연(가명·21·고려대 정경학부)씨는 친구의 소개로 갔던 청담동의 한 이탈리아 음식점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둘이서 가면 5~6만원 정도 나오는 수준이에요. 하지만 돈이 하나도 안 아까울 만큼 음식이 맛있고 분위기도 좋아서 자주 가요." 다른 음식점들에 비하면 꽤 비싼 편이지만 가격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싸고 맛있는 곳들도 좋긴 하지만, 그런 곳들은 대부분 서비스나 분위기 차원에서 많이 부족하더라구요."

물론 학생 신분으로 이렇게 가게의 분위기까지 따져서 비싼 곳에 가는 것은 부담스럽기도 하다. 한달 용돈은 정해져 있고 그 안에서 지출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허강은(21·사회생활학과)씨는 자신의 용돈 안에서 최대한 조절을 하며 기분을 낸다. "한 번 비싼 음식을 먹고 나면 얼마 동안은 용돈을 아껴 써야해요. 그래도 그만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니까 자주는 못 가더라도 고급 음식점 찾아가는 건 좋아하는 편입니다." 그는 1인당 약 3~4만원 정도까지는 감수할 수 있다며 싱긋 웃었다. 


같이 먹으러 가요

대학생들은 정보화 시대에 걸맞게 인터넷에서 다양한 음식점 정보를 얻는다. 특히 회원들의 경험담을 직접 들을 수 있는 식도락 동호회들은 회원 수가 점점 늘어가고 있다.

배윤상(24·고려대 경영학과)씨는 '고양시 식도락 동호회'(이하 고식동)의 운영자 중 한 사람으로 활동하고 있다. '고식동'은 한 달에 한 번 정기 모임을 갖는다. 정기 모임 때 갈 음식점은 까페 운영자들이 미리 선정하며, 한 번 모일 때의 회비는 만원 남짓이다. 그는 동호회에서 음식점에 갔을 때 회원들의 음식 평가의 전문성에 감탄했다. "한 번은 태국 음식 전문점에 갔는데 재료부터 맛까지 세심하게 지적해 주시는 회원이 있어서 상당히 놀란 적이 있어요." 친구들과는 음식의 맛만 따지지만 동호회 사람들의 평가는 상당히 전문적인 지식까지 곁들여진다. 실제로 '고식동' 회원 중에는 요리사도 있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음식을 즐길 수 있다는 점 역시 식도락 동호회의 매력이다. 프리챌 식도락 커뮤니티 'velvetbar'에는 보통 사람들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음식점 정보가 많이 올라온다. 정모를 제외한 모임은 만원 이상의 회비면 충분하다. 'velvetbar'의 회원 윤신애(21·이화여대 생명과학과)씨는 동호회 활동을 통해 '함께하는 사람들'을 얻은 것이 가장 기쁘다고 말한다. "사실 맛있는 음식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만난 사람들과 이렇게 친해질 줄은 몰랐어요. 누구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과 음식을 함께 먹으면서 더 많이 친해지는 것 같아요." 이처럼 식도락 동호회들은 이제 단순히 먹는 모임에서 벗어나 사람 사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따뜻한 모임의 면도 동시에 지닌다.


여러분 식도락가 되세요!

"친구를 따라 몇 번 맛있는 음식점에 가봤더니 이제는 아무 거나 못 먹어요. 저도 이제 식도락가가 된 건가요?" 이미란(가명·22·성균관대)씨는 자신과는 상관없게 느껴지던 '식도락가'라는 말이 이제는 굉장히 가깝게 느껴진다고 한다. 까다롭게 음식을 고르는 친구를 따라 어느새 식도락가가 되어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누구나 식도락가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최지영(가명·23·부경대)씨는 맛있는 음식점을 알게 되면 꼭 친구들을 데리고 간다. "여태까지 제가 데려가서 맛없다고 한 친구는 한 명도 없었어요." 그는 친구들이 자신이 소개해 준 음식을 먹고 맛있다고 할 때 기분이 좋다고 한다. 이제 주위 친구들도 다들 식도락가가 되어서 같이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을 즐긴다. 이처럼 대학생들의 식도락 문화는 주위 사람들을 통해 옮아가는 모습을 보인다.

대학생들은 가격에 따라 음식을 즐기거나 동호회에서 활동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식도락을 즐긴다. 이들은 식도락이라는 말이 그리 거창한 말이 아님을 몸소 보여준다.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것은 우리 생활 속 작은 즐거움이 아닐까? 이제 대학생들에게 식도락 문화는 하나의 일상으로 자리잡고 있다. 


 


웹진 듀 2002년 4월호 기사
http://ewhadew.com/news/articleView.html?idxno=6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