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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리뷰] 윤고은, 『무중력 증후군』

pencilk 2008. 12. 18. 09:00

무중력증후군

윤고은 저
한겨레출판 | 2008년 07월


'소외감'으로부터 도망치고자 뛰고 또 뛰는 1,000m 계주 같은 소설

| --- 정현경 (pencil@yes24.com)

1995년에 발매된 서태지와 아이들의 4집 앨범에 수록된 '시대유감'이라는 곡은 "오늘이 바로 두 개의 달이 떠오르는 밤이야"를 비롯한 몇 구절 때문에 가사가 없는 MR 버전으로 앨범에 수록되었다. 당시 심의에서 파악한 '두 개의 달이 떠오르는 밤'의 의미는 모든 것이 뒤집어지는 '세상의 전복'이자 기존 세력에 대한 '부정'과 '대항'이었다.

여기 두 개의 달로도 모자라 달이 다섯 개, 여섯 개로 증식하는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 있다. 2004년 대산대학문학상으로 등단한 80년생 신예작가 윤고은의 이 당돌한 소설 『무중력 증후군』은 그러나, 세상에 대한 전복이니 기존 세력에 대한 쿠데타니 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설이 아니다. 『무중력 증후군』이라는 제목에서 풍기는 것처럼 미래사회의 모습을 그린 공상 판타지 소설이라고 정의 내리기도 힘들다. 보름에 한번씩 증식하는 달로 인해 지구에서 일어나는 소동을 그린 이 소설을 통해 작가가 줄곧 이야기하는 것은, 바로 현대인의 '소외감'이다.

현대인들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수많은 소외감에 시달리며 살아간다. 또한 그 소외감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 끊임 없이 무언가에 소속되고자 노력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대학 진학에 실패한 재수생들과 대학 졸업 후 취업에 실패한 취업 재수생들, 그리고 오랜 직장 생활 끝에 퇴직한 이들까지, 그들 모두는 갑자기 자신의 소속이 사라진 것에 대해 불안해 하고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듯한 느낌에 시달리곤 한다. 그리고 그 소외감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한 방편으로 자주 등장하는 것 중 하나가 '집단주의'다.

『무중력 증후군』에는 '무중력자'라는 생소한 이름의 집단이 등장한다. 달이 여러 개로 분화되면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이 집단은 중력을 거부하고 무중력을 지향하며, 언젠가 달로 이주하는 것이 그들의 최고 목표다.

두 개의 달이 뜬 날로부터 며칠 후, 주인공 노시보의 어머니는 달구경 갔다 오겠다는 쪽지만을 남긴 채 사라진다. 진 밥을 좋아하면서도 고두밥을 좋아하는 가족들 때문에 평생을 고두밥을 지어온 그녀는, 어느 날 홀연히 돌아와 무중력 미용실을 연다. 그녀는 더 이상 고두밥을 짓지 않는다. 자신이 늙어가는 이유를 중력 때문이라고 믿는 이 과장 역시 무중력자임을 선언하고 그 동안 왼쪽 가슴에 품고만 다니던 사표를 내버린다..

그들은 모두 무언가로부터의 소외감에 시달려온 사람들이다. 지금까지 자신을 소외시켜온 기존의 '중력의 세계'로부터 벗어나 더 이상 소외 당하지 않을 수 있는 새로운 세계, 바로 '무중력의 세계'로 떠나고자 하는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이제 혼자가 아니다. '무중력자'의 수는 점점 늘어가고, 수많은 무중력자들이 강남역 앞에서 집회를 연다. 그들의 행보는 연일 언론에 보도되고, 이제 그들은 사회의 이슈를 이끌어가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의 주인공 노시보는 이 한바탕 소동 속에서 어느 쪽에 설까? '무중력자'들 속에 끼어 우주로 떠나겠다며 문워크로 행진할 만한 적극성도 없고, 그렇다고 지구가 그렇게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닌 그가 사회로부터, 사람들로부터 소외 당하지 않게 위해 선택한 방법은 바로 '뉴스홀릭'이다. 그는 매일마다 모든 종류의 뉴스를 섭렵하고, 인터넷 검색어 순위를 수시로 살핀다. 순위에 아는 것이 올라오면 안심이 되고 모르는 검색어가 등장하면 부리나케 정보를 찾아보는 그의 모습은, 바로 1분이 멀다 하고 바뀌는 포털 사이트의 뉴스 홍수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작가는 현대인의 소외감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무중력 증후군』이라는 낯설고도 발랄한 제목처럼 가볍고도 경쾌하게 빚어내고 있다. 중력을 거부하는 무중력자들이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처럼 연이어 건물 옥상에서 투신 자살을 하자 노시보의 아버지는 "4월에 낙엽이라니"라는 어중간한 애드리브로 대화에 찬물을 끼얹고, 횡단보도를 건너가다가 바닥에 누워버리는 새로운 자살 방식을 택한 사람들을 11층 사무실 창가에서 내려다본 노시보는 '그들이 죽어버린 것이 아니라 마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것처럼 보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횡단보도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사람으로 볼 수 있는 창의적 사고력은, 슬프게도 '소외감'이라는 녀석 앞에 속수무책으로 고개를 떨구고 만다. 취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자꾸만 회사가 망하는 통에 1년 동안 8개의 회사를 전전해야만 했던, 88만원 세대의 대표주자 노시보. 그가 가장 소외감을 느끼는 순간은 바로 사람들이 각자 다른 생각들을 품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회의 때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강압적'으로 발표해야 하는 현대인들은 끊임 없이 남들과 다를 것을, 또 남들보다 나을 것을 요구 받지만, 동시에 그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늘 소외감에 시달리며 살아가야 한다.

『무중력 증후군』은 이제는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데 필수 옵션이 되어버린 '소외감'으로부터 도망치고자 뛰고 또 뛰는 1,000m 계주 같은 소설이다. 응원단은 사회의 모든 현상에서 끊임 없이 규칙을 찾아내고(혹은 만들어내고) 하나의 단어로 규정 지어 유행을 시키고야 마는 기자들이고, 달리기 주자는 그 기자들이 쓴 기사대로 무리를 지어 집단을 만들어내고 그 집단에 소속됨으로써 비로소 안심하는 이 시대의 모든 소외 당한 이들이다. 달이 2개에서 6개로 분화되는 동안 그들은 스스로 만들어낸 '무중력자', '무중력 섹스', '무중력 증후군'이라는 바통을 이어받아 있는 힘을 다해 달리기를 한다. 이 숨가쁜 이어 달리기의 결승점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즐겨야 할 것은 바로 경기 그 자체, 바통과 바통이 터치하는 바로 그 순간의 경쾌함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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