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ncilk

부산국제영화제 10/12 : 세븐 썸딩, 더 헌트, 뷰티풀 2012 본문

THINKING/영화

부산국제영화제 10/12 : 세븐 썸딩, 더 헌트, 뷰티풀 2012

pencilk 2012. 10. 22. 22:28

야구도 졌으니 미뤄왔던 10/12 마지막 날 부산국제영화제 후기나 써야겠다. 그러고 보니 10월 12일은 준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롯데가 두산에 역전승하면서 플레이오프 진출이 결정된 날이었다. 아놔.. 그땐 진짜 신났었는데. 아침부터 세븐 썸딩, 더 헌트, 뷰티풀 2012 이렇게 3편의 영화를 봤는데, 저녁 8시에 시작해서 9시 반에 끝나는 마지막 영화 뷰티풀 2012를 보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2 대 0으로 지고 있던 야구가, 영화의 난해함과 견디기 힘든 정적인 시퀀스 + 롱테이크에 지쳐 슬쩍슬쩍 휴대폰으로 스코어를 확인할 때마다 3 대 0이 되었다가, 3 대 1이 되었다가, 영화가 끝날 때쯤에는 3 대 3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자마자 중계방송을 보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지하철 안에서 4 대 3으로 역전했고 부산 지하철은 환호의 도가니가 되었었지...

다 지난 일이다. -_-
 
 

 

세븐 썸딩 Seven Something 
아시아영화의 창
감독 : 지라 말리쿤 / 아디손 트레시리카셈 / 파윈 푸리짓판야

제작국가 : Thailand
제작연도 : 2012
러닝타임 : 153min

태국의 유명영화사인 GTH에서 창립 7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3명의 감독이 각각 1편씩 연출한 옴니버스 영화. 2PM의 닉쿤이 출연했다. 닉쿤이 나와서 본 것, 맞다. 사실 처음에는 닉쿤이 출연했다고는 해도 큰 기대 하지 않았고 꼭 볼 마음도 없었는데, 씨네21에서 소개하는 추천작 30편 안에 이 영화가 들어간 것을 보고, 게다가 3편으로 구성된 옴니버스 영화 중에서 닉쿤이 출연한 마지막 편이 가장 괜찮고 여운이 길게 남는다는 씨네21 기자의 평을 보고 기왕 국제영화제 가는 거 시도해봐야겠다 싶어졌다. 국내에 개봉할 것 같지도 않고 (러닝타임이 무려 2시간 반 ㄷㄷ) 이번이 아니면 못 볼 것 같아서 티켓팅 도전! 의외로 쉽게 티켓팅이 되었다. 그리고 보고나서 정말 후회없는 선택이었다는 생각을 했다는.

영화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7년을 주기로 큰 변화를 겪게 된다는 전체 하에 14살 청소년의 사랑을 그린 <14>, 21살에 헤어져 28살에 다시 만난 남녀 배우의 사랑을 그린 <21/28>, 그리고 42세 여성의 사랑과 삶을 그린 <49.195>로 구성되어 있다. <14>의 경우 페이스북과 유투브 등 SNS 시대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사랑을 그리고 있는데, 상대방을 좋아해서 연애를 하는 건지 페이스북에 올릴 사진과 동영상을 찍기 위해 연애를 하는 건지 헷갈릴 정도로 SNS 상의 반응에 집착하는 남자 주인공이 웃기기도 하고, 누군가를 만나서도 잠시도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지 않는 요즘 사람들의 폐부를 찌르는 듯해서 흥미롭기도 했다. 두번째 이야기인 <21/28>은 21살에 만나 영화를 찍고 배우로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두 남녀 배우가 엄청나게 싸우다가 헤어지고, 그리고 7년 후 28살 잊혀져버린 한물 간 배우로 재회하는 이야기다. 솔직히 두번째 이야기는 좀 오글거리기도 하고 그 구성이 너무 뻔하기도 해서 그냥 그랬다. 남자 주인공이 21살을 연기할 때는 엄청난 미소년이다가 28살을 연기할 때는 배 나온 아저씨가 돼있어서 깜짝 놀랐다는 것 정도. 물론 얼굴은 여전히 꽃미남이었지만 그 뱃살을 어떻게 만든겨 대체...

그리고 세번째 이야기, <49.195>는 비행기 사고로 남편을 잃은 42살 여자가 우연히 공원에서 마주친 20대 남자와 마라톤을 하면서 상처를 치유해가는 이야기다.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사랑보다는 상처와 치유, 그리고 인생에 더 방점을 두고 있는 영화다. 닉쿤은 어리고 '억' 소리나게 잘 생긴 20대 청년으로 나오는데, 몸이 약해서 운동을 하면 안 되지만 가족들 몰래 매일 조금씩 달리며 마라톤에 도전하고 있다. 여주인공 역을 맡은 수콴 불라쿤은 감독 겸 배우로 활동 중인 태국을 대표하는 여배우란다. 그런 사람과 첫 작품을 찍은 걸 보면 닉쿤으로서는 엄청난 행운이었던 것 같은데, 뭐 사실 태국어는 하나도 못 알아들으니 정확한 건 알 수 없지만 닉쿤의 연기력이 굉장히 안정적인 건 사실이었다. 무엇보다, 너무 잘 생겼다. ㄷㄷㄷㄷ 솔직히 잘 생기니 눈 한번만 찡긋해도 다 연기더라. 나 참.. 아, 영화 또 보고 싶네.. 일단은 캐릭터가 굉장히 잘 어울려서 좋았다. 약간은 어눌한 말투로 한국말 하는 닉쿤이 아닌, 유창하고 조금은 남자답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태국어를 하는 니치쿤 호르베지쿨을 볼 수 있다.



더 헌트
월드 시네마
감독 : 토마스 빈터베르크

제작국가 : Denmark
제작연도 : 2012
러닝타임 : 111min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절절히 느끼게 해주는 영화. 어린 아이가 무심코 내뱉은 말 한마디에 성범죄자로 몰리게 된 주인공과 그를 향한 사람들의 편견, 악의, 그리고 폭력성은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답답하고 간담이 서늘해지는 공포를 느끼게 했다. 무엇보다 가장 절친했던 사람들, 누구보다 그를 잘 알 거라 생각했던 주변 사람들이 낯선 타인보다도 더 잔인하게 변해가는 모습은 인간의 본성으로서 존재하는 '폭력성'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어쩌면 폭력성과 사냥 본능은 인간의 본성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동물이든, 혹은 사람이든, 사냥감이 나타났을 때 여럿이 달려들어 대상을 몰아가는 것, 그것은 원시부족사회에서뿐만이 아니라 현대사회에서도 꽤나 자주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에.

영화를 보면서 떠올린 또 한가지는 아이의 순수성, 혹은 폭력성에 관한 것이었다. 아이들은 상상력이 풍부해서 사진이나 영상을 통해 간접경험한 것을 진짜 경험한 것처럼 착각하기 쉽고, 또한 순수하기 때문에 별다른 악의 없이 그 어떤 어른보다도 잔인해질 수 있다. 모든 사건의 발단은 아이의 말 한마디에서 시작되었는데, 그렇다고 아이를 비난하거나 탓하기도 힘든 상황. 루카스는 끝까지 아이를 감싸지만, 솔직히 나라면 그러지 못했을 것 같다. 순수와 무지가 잔인한 폭력이 되어 돌아올 수도 있다는 사실은 한편으로는 굉장히 슬픈 일이다.

 

 

뷰티풀 2012
아시아영화의 창
감독 : 김태용, 구 창웨이, 허안화, 차이밍량

제작국가 : Hong Kong, China/China
제작연도 : 2012
러닝타임 : 90min

중국의 인터넷 TV 사이트 유쿠가 제작한 옴니버스 영화. '무엇이 아름다운가'라는 주제 아래 김태용, 차이밍량, 구 창웨이, 허안화가 감독을 맡은 4편의 단편영화를 담고 있다. 사실 이 영화를 선택한 건 '차이밍량'과 '허안화'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엄청 오래 전에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차이밍량의 '안녕, 용문객잔'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ㅡ여기까지 쓰고 나서 찾아봤는데 2003년작이다. 무려 9년 전이다. 그때 나는 무려 22살. ㄷㄷㄷㅡ 그때도 그 영화를 다 이해한 것은 아니었지만 끝없이 이어지던 롱 테이크와 주인공들의 걸음이 잊혀지지 않는, 진한 여운이 남는 영화였다. 그래서 이번에도 다소 난해하고 기나긴 롱테이크를 각오하고 예매한 영화긴 했는데, 정말 난해했다. -_ㅜ

김태용 감독의 영화와 허안화 감독의 영화는 그나마 낫다. 대사가 많고, 그만큼 두 감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았다. 하지만 구 창웨이 감독과 차이밍량 감독의 영화는 말 그대로 멍 때리고 볼 수밖에 없었다. 특히 차이밍량 감독의 작품 중 바쁘게 돌아가는 홍콩의 도심 한가운데에서 그날 먹을 양식을 사서 돌아가는 승려의 느린 걸음을 대비시킨 영상은 아름다움을 하나의 거대한 캔버스에 그려내듯 이미지로 표현했다, 고 부산국제영화제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데, 그 승려의 느린 걸음이라는 것이 약 3분에 걸쳐 땅에서 한 발을 들어 한 걸음을 옮기는 속도였으니, 보다가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일상 속도로 찍은 후 필름을 느리게 감거나 하는 작업 없이, 그야말로 승려 역할을 하는 배우가 오랜 시간에 걸쳐 걸음을 옮기는 연기를 했기에, 3분에 걸쳐 걸음을 옮기는 동안 한 발이 허공에 떠 있을 때는 비틀거리거나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는 것이 보이기도 했다. 심지어 그런 승려의 느린 걸음을 촬영하고 있는 카메라를 지나가던 행인들이 손가락질하거나 신기한 듯 쳐다보기도 한다.

아아, 이 무슨 영화란 말인가! 당췌 뭔 뜻이여!!!
그래서 아름다움이 뭔데!!!

결국 영화 후반부에는 거의 집중하지 못하고 야구 중계 검색하고 있었다는 슬픈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