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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제37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 침묵의 미래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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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문학상 작품집이 나왔다. 그래서 언제나처럼 거의 습관적으로 구매 버튼을 눌렀다.
고백하자면 서점 직원 A가 된 2007년부터 이상문학상, 이효석문학상, 황순원문학상 현대문학상 수상집을 비롯하여 올해의 작가상, 올해의 좋은 소설 등등 온갖 수상작 모음집들을 사모았지만 그 중 대상 수상작 외에 우수상 수상작까지 전부 끝까지 읽은 것은 거의 없다. 읽고 싶은 책이 나오면 그때마다 사모으다 보니, 아직 다 읽지 않았는데도 읽던 책을 던져두고 또 새로운 책을 읽기 시작해버리는 나쁜 습관이 생긴 탓이다. 이러한 습관을 반성하며 작년부터인가 수상작품집은 읽기 시작하면 반드시 끝까지 다 읽을 때까지 새로운 책을 펼치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이번에도 그 '끝까지 다 읽기'를 실천에 옮기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 그동안 내가 왜 수상작품집을 끝까지 읽지 못했는지 이유를 알게 되었다.
수상작품집에는 수상작 선정 이유, 대상 수상작, 대상 수상작가의 자선 대표작, 우수상 수상작,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그 모든 작품들의 선정 경위와 심사평이 실린다. 문제는 내가 한 작품을 읽을 때마다 그 작품에 대한 심사평을 읽고 싶어서 나도 모르게 가장 마지막 장을 펼치게 된다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작품을 읽은 직후 '이게 뭔 소리여-'하며 자동적으로 심사평 혹은 해설을 읽게 된달까. 마치 수험생이 문제집 풀면서 한 문제 풀 때마다 정답과 해설을 확인하며 맞았는지 틀렸는지 확인하는 격이다. 해설을 읽지 않고는 작품이 이해가 가지 않는 나의 무지 탓이기도 하고, 모든 작품을 다 읽은 후에 심사평을 읽었을 때 각 작품의 내용이 바로바로 기억나지 않아 헤매기 일쑤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심사평이 작품별로 자세한 해설과 함께 실려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각 심사위원 별로 기억에 남거나 좋게 본 작품 몇 개만을 주관적으로 선정해 평을 써놓은 형식이기 때문에, 방금 읽은 작품에 대한 심사평을 읽으려면 해당 심사평을 찾는 수고를 들여야 하기까지 한다. 아무튼 근본적인 문제는 작품을 다 읽었을 때 '아!' 하는 감탄사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음?'하는 의문사가 먼저 튀어나온다는 데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문학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체코 프라하 국립미술관 소장품 전시회에서 '무용수'라는 제목의 입체파 그림을 한참동안 들여다보며 '대체 이 그림의 어느 부분이 무용수란 거지. 무용수의 동작이 너무 재빨라서 이렇게 표현된 건가?'하는 생각이나 하며 비실비실 웃기도 하고, 거장 감독 알랭 레네의 영화 '당신은 아무것도 보지 않았다'를 보면서 졸다 깨다 인상 쓰다를 반복하다가 극장을 나서며 대체 내가 본 게 뭔지 알 수 없는 기분에 허탈감마저 느끼며 '헐..'을 내뱉기도 한다.
혹자는 그럴 거면 뭐하러 보냐고 할 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왜 전시회를, 영화를, 문학상 수상작품집을 보는지 그 이유를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확실한 건 나의 감상이 '헐..'이 전부라 할 지라도, 그 모든 과정들이 좋다는 거다. 전시회를 보러 가는 것도, 예술영화를 보는 것도, 문학상 수상작을 읽는 것도. 그리고 언제나 '헐..'만이 감상으로 남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때로는 전문가처럼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어도, 문학으로 인해, 혹은 그림으로 인해, 영화로 인해, 큰 감동을 받기도 하고 희열을 느끼기도 하기 때문이다. 길을 걷고 음악을 듣고 누군가를 만나는 것처럼, 내게 그것들이 일상이 되었으면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딴 글이 무슨 2013 이상문학상 작품집에 대한 감상이냐고 하면 할 말이 없는데, 그렇다고 카테고리를 '글'이 아닌 'Daily Life'로 옮기진 못하겠다. 그러니까 김애란의 '침묵의 미래'는 대상 선정 이유를 읽은 후에 보고도 뭔 소린지 이해를 못해 다시 한번 선정 이유를 읽고서야 글의 화자가 누구인지 깨달았고, 그러고도 한번 더 읽고서야 대강의 글의 윤곽을 이해했으며, 심사평을 다 읽은 후에 또 한번 더 읽고서는 '역시 글을 쓰는 사람보다 그 글을 평하고 해설하는 사람들이 더 대단한 것 같아...'라고 생각했다는 뭐 그런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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