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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1Q84』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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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지른 쪽은 적당한 이론을 달아 행위를 합리화할 수도 있고 잊어버릴 수도 있어. 보고 싶지 않은 것에서 눈을 돌릴 수도 있지. 하지만 당한 쪽은 잊지 못해. 눈을 돌리지도 못해. 기억은 부모에게서 자식에게로 대대로 이어지지. 세계라는 건 말이지, 아오마메 씨, 하나의 기억과 그 반대편 기억의 끝없는 싸움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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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_『1Q84』 1권이 나왔을 때 조금 읽다가 한 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는 완결이 나면 그때 한꺼번에 읽어야겠다며 덮어버렸다. 그러고도 한동안, 어디서 잘못 들은 건진 몰라도 책이 4권까지 나오는 것으로 잘못 알고 출간되자마자 차곡차곡 3권까지 사서 책장에 모셔놓고도 4권이 나오길 기다리며 읽지 않고 있었다. 한참 후에야 3권이 완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그때는 이미 왠지 의욕이 꺾여버린 후여서 지금까지 그대로 ㅡ특히 2, 3권은 랩핑도 뜯지 않은 채ㅡ 책장에 꽂혀만 있었다는 슬픈 전설. 그래서 출간된 지 3년 반만에 이제야 1권을 읽었다. 그 유명한 1Q84. 음, 하루키는 뛰어난 이야기꾼이었어.
가난했던 대학생 시절 『해변의 카프카』를 보기 위해 도서관에서 대출을 하려고 하면 늘 예약신청 인원수 초과거나, 겨우 내 차례가 왔을 땐 1권이 아닌 2권만 먼저 대출이 되어 몇 장 뒤적거리다 결국 읽기를 포기했었다. 그래서 내가 기억하는 하루키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상실의 시대』, 그리고 『태옆감는 새』 정도에서 멈춰 있다. 아무래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 건 감수성 폭발하던 고딩 시절에 읽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였기 때문에 내게 하루키의 이미지는 '이야기꾼'이라는 이미지보다는 '감수성 건드리는 문체 혹은 분위기' 정도로 남아 있는데 ㅡ거기에는 '내가 고딩 때 읽었으니 그렇게 밑줄 그어가며 읽었지, 사실 하루키는 허세가 강하지'라는, 당시 과하게 부풀어오른 일본문학의 인기에 대해 폄하하는 태도같은 것이 깔려 있었다.ㅡ 『1Q84』로 인해 하루키에 대한 나의 그런 편견이 산산조각 나는 것을 느꼈다.
두손두발 다 들었음. 패배 인정. 하루키는 대단했다.
근데 왜 이렇게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고 한번 아니라고 생각한 사람은 계속 까는 케이팝스타 JYP 같은 기분이 드는 거지.
ㅋㅋ 반성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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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서 한 걸음도 밖으로 나오지 않는 일 따위,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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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초등학교 시절, 그는 변변히 말다운 말을 하지 않았다. 막상 기회가 오면 말을 썩 잘한다는 건, 그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친하게 이야기할 상대도 없었고, 사람들 앞에서 말재루를 펼칠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항상 입을 닫고 있었다. 그리고 남이 하는 말에ㅡ그것이 어떤 말이건ㅡ주의 깊게 귀를 기울이는 것을 습관으로 삼았다. 거기에서 뭔가를 얻으려고 항상 유의했다. 그 습관은 이윽고 그에게 유익한 도구가 되었다. 그는 그 도구를 사용하여 수많은 귀중한 사실을 발견했다. 세상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의 머리로 뭔가 생각한다는 걸 아예 하지 못한다ㅡ그것이 그가 발견한 '귀중한 사실' 중 하나였다. 그리고 생각을 하지 못하는 인간일수록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
2.
"내가 한마디 하자면, 아오마메 씨." 아유미는 와인 잔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이 세상이라는 건 이치가 통하지도 않고 친절한 마음도 너무 부족한 거 같아."
+
드디어 다 읽었다.
다 읽고 나서 사람들이 이게 진짜 끝이냐고 한 이유를 알겠군.
벌여놓은 일은 엄청나게 많은데, 아무리 여운을 남기네 열린 결말이네 좋게 봐주려고 해도 마무리가 너무 빈약한 것은 사실. 어느 정도 일단락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좀 실망스러운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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