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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aily Life

친구의 전화

pencilk 2003. 9. 20. 03:38

아는 녀석이 전화와서 그런다. 술이 좀 들어가니 취한 건 아니고 약간 업되서 생각나길래 전화한다고.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먼저 연락하거나 전화 잘 안 하는 내 성격 잘 알고 그래서 그러려니 하지만 가끔은 섭섭하다고.

나는 언제나처럼 '나 원래 그런 거 알잖아'라고 말했지만 오늘은 평소와는 달랐다. 그냥 아주 가끔은 혼자서만 연락하는 것 같아 쬐끔 섭섭하다면서 웃는 그 애에게 나는 떨떠름하게 음-하고 대꾸할 수밖에 없었다.

그 애는 오늘도 우리가 처음 알게 되었던 시기를 끄집어내고 회상하고 말한다. 하긴, 그 때 말고는 둘이 얼굴 보고 이야기한 시간이 거의 없다. 녀석은 부산에 사니까.

말하지 않는 것이 있다. 내가 떠올리는 그 때와 그 애가 떠올리는 그 때가 어떻게 다른지 솔직히 모르겠다. 나에게는 부담스러웠던 시간이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애가 부담스럽게 구는 것 같아서 도망치기 바빴던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 애는 오늘도 그 때를 이야기한다.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는 것 같으면서도 또 알 수 없는 애매모호한 말투로. 나는 그 애가 내뱉는 애매모호한 말들 속에서 그 애를 편하게 대해야 하는 건지 떨떠름하게 대해야 하는 건지 모르는 상태로 어정쩡하게 서 있다.

그 때 내가 느꼈던 것도 착각일지도 모르고, 지금도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렇다. 원래 성격이 그런 놈인가보다 하고 웃어넘기면 될 텐데 그게 잘 안 된다. 내 성격 탓인가보다. 한 번 어색해져버리면 나도 모르게 그 이후로는 늘 이렇다. 그 애는 내가 참 편한 친구라는데 나는 안 그렇다.

음, 알겠군.
그 때도 내가 녀석을 결정적으로 밀어냈던 이유가 그거였다.
그 애와 나는 별로 비슷하지도, 너무너무 잘 맞는 성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애는 그렇다고 생각했었다. 나와 자기가 너무 닮은 것 같다고, 우리는 너무 잘 통할 것 같다고 말하는 그 애에게 거부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아마도 지금도 그런 것 같다.

뭐 마음이 너무나 잘 맞는 친구는 아니어도 좋은 녀석이라는 건 안다.
뭔가 씁쓸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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