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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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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pencilk 2003. 11. 12. 05:49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국내도서
저자 :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 / 이재룡역
출판 : 민음사 1990.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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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회귀란 신비로운 사상이고, 니체는 이것으로 많은 철학자를 곤경에 빠뜨렸다. 우리가 이미 겪었던 것이 어느 날 그대로 반복될 것이고 이 반복 또한 무한히 반복된다고 생각하면! 이 우스꽝스러운 신화가 뜻하는 것이 무엇일까?
영원한 회귀의 신화는 부정의 논법을 통해, 한번 사라지면 두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 인생이란 하나의 그림자 같은 것이라고, 그래서 그 인생은 아무런 무게도 없고 처음부터 죽은 것이나 다름 없어서, 인간이 아무리 잔복하고 아무리 아름답게 살아보려고 해도 그 잔혹과 아름다움이란 것조차도 무의미하다고 주장한다.


(중략)
우리 인생의 매순간이 무한한 횟수로 반복되어야만 한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혔듯 영원성에 못박힌 꼴이다. 이런 발상은 끔찍하다. 영원한 회귀의 세상에서는 몸짓 하나하나가 견딜 수 없는 책임의 짐을 떠맡는다. 바로 그 때문에 니체는 영원 회귀의 사상은 가장 무거운 짐이라도 말했던 것이다.
영원한 회귀가 가장 무거운 짐이라면, 이것을 배경으로 거느린 우리의 삶은 찬란한 가벼움 속에서 그 자태를 드러낸다.


그러나 묵직함은 진정 끔찍한 것이고, 가벼움은 아름다운 것일까?
가장 무거운 짐이 우리를 짓누르고 허리를 휘게 만들어 땅바닥에 깔아 눕힌다. 그래서 유사 이래 모든 연애사에서 여자는 남자 육체의 하중을 받기를 갈망했다. 따라서 무거운 짐은 동시에 가장 격렬한 생명의 완성에 대한 이미지가 되기도 한다. 짐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우리 삶이 지상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우리의 삶은 보다 생생하고 진실해진다.
반면에 짐이 완전히 없다면 인간 존재는 공기보다 가벼워지고 날아가버려, 지상적 존재로부터 멀어진 인간은 기껏해야 반쯤만 생생하고 그의 움직임은 자유롭다못해 무의미해지고 만다.


그렇다면 무엇을 택할까? 묵직함, 아니면 가벼움?



이것이 기원전 6세기 파르메니데스가 제기했던 문제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 세상은 빛 ㅡ어두움, 두꺼운 것ㅡ얇은 것, 뜨거운 것ㅡ 찬 것, 존재ㅡ비존재와 같은 반대되는 것의 쌍으로 양분되어 있다. 그는 이 모순의 한 극단은 긍정적이고 다른 쪽은 부정적이라 생각했다. 긍정과 부정의 극단적 양분이 유치할 정도로 안이하게 보일 수도 있다. 단 이 경우는 예외이다. 무엇이 긍정적인가? 묵직한 것인가 혹은 가벼운 것이가?


파르메니데스는 이렇게 답했다. 가벼운 것이 긍정적이고 무거운 것이 부정적이라고. 그의 말이 맞을까? 이것이 문제이다. 오직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모든 모순 중에서 무거운 것ㅡ가벼운 것의 모순이 가장 신비롭고 가장 미묘한 모순이다.




+
밀란 쿤데라는 이 글에서 니체의 회귀사상을 언급하면서 가벼움과 무거움에 대해 논한다. 우리는 세상을 단 한 번밖에 살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매순간 해야 하는 선택들이 옳은지 그른지 결코 알 수 없다.(한 번 선택해보고 틀린 선택이면 다시 한 번 생을 살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쿤데라는 우리가 하는 모든 진지한 고민들도, 심지어 우리의 삶조차도 한없이 가벼운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묻는다. 가벼움은 언제나 부정적인 것인가? 아니면 파르메니데스의 말처럼 가벼움이 긍정적이고 무거움이 부정적인 것인가? (여기에서 가벼움은 경박함과 구분될 것이다)


가벼움과 무거움이, 과연 반대의 개념일까? 둘은 극과 극에 서 있을까, 아니면 손끝 하나의 차이로 구분되어 있을 뿐 바로 옆에 서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