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nci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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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KING/드라마

드라마ㅣ 연애시대

pencilk 2007. 2. 6. 21:21

2부
사진을 보면 슬퍼진다.
사진 속의 나는 환하게 웃고 있어서
이 때의 나는 행복했구나… 착각하게 된다.

산다는 건 어차피 외로움을 견디는 것.
누군가가 그랬지.
지구에 4억 인구가 있다면 4억 개의 고독이 있다고.
고독은 사람을 철학하게 하는구나.


4부
이유없이 불안할 때가 있다.
늘 맞이하는 아침인데도 어디선가 느껴지는 이질감.
변한 건 없는데도 뭔가 빠진 것 같은 허전함.
이유없이 불안할 때가 있다.
그것은 미래가 보내는 경고.
이미 퇴화한 인간의 예지력이 보내는 메시지.
너의 일상이 무너지려 해.
내 일상은 지루하고 보잘것없었으나 평화로웠다.
지구 어느 쪽에선가의 전쟁과 격동은 영화처럼 현실감이 없었고,
그리하여 내 작은 세계는 평화로웠다.


5부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드는 생각.
그 때 솔직했더라면 좋았을걸. 
나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드는 생각.
그 때, 우리 중 한 사람이라도 솔직했더라면, 좋았을걸.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7부
어디서부터가 사랑일까.
걱정되고 보고싶은 마음부터가 사랑일까.
잠을 설칠 정도로 생각이 난다면, 그건 사랑일까.
어디서부터가 사랑일까.
오랜 시간이 지나 뒤돌아봐도, 그래도 가슴이 아프다면
그게 사랑이었을까.
그것은 사랑이었을까.


8부
일정한 슬픔 없이 어린 시절을 추억할 수 있을까.
지금은 잃어버린 꿈, 호기심, 미래에 대한 희망.
언제부터 장래희망을 이야기하지 않게 된 걸까.
내일이 기다려지지 않고, 1년 뒤가 지금과 다르리라는 기대가 없을 때,
우리는 하루를 살아가는 게 아니라, 하루를 견뎌낼 뿐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연애를 한다.
내일을 기다리게 하고, 미래를 꿈꾸며 가슴 설레게 하는 것.
연애란, 어른들의 장래희망 같은 것.

지구상에 65억 인구가 있고, 신이 아무리 전지전능하다지만,
그 많은 사람의 앞날을 미리 알고 정해놓을 리가 없다.
그런 불필요한 수고를 할 리가 없다.
그래서 나는 운명을 믿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그것은 운명이었다고 믿고 싶어질 때가 있다.
지난 날을 돌아보며 그것은 운명이지 않았을까, 변명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다른 길을 선택할 순간이 얼마나 많았는지 잊어버린 채.
그 순간의, 그 인연의 깊이와 무게가 
시간이 지날 수록 무거워지고 감당할 수 없을 때.
누군가 나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을 때.
내가 그 누군가의 인생을 완전히 틀어놓았다고 밖에 할 수 없을 때.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선명해지고 중요해지는 순간을 돌아보며
차라리, 그런 만남은 운명이었다고 눈 돌리고 싶어진다.


12부
그 날, 그 시간의 일들이 마치 데자뷰처럼 느껴졌던 것은
이미 알고 있었기에.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오리라는 것을 알고
준비를 했기에.
익숙해지도록 상상 속에서 몇번이나 반복해
아파해온 장면이기에.
그런데도,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 날, 그 거리의 나에게는.


13부
기억이란 늘 제멋대로다.
초등학교 5학년 문집 속에서 본 나의 꿈은 
타인의 꿈처럼 생소하다.
그 글을 쓴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는 얼마나 같을까.
기억이란 늘 제멋대로다.
지난날의 보잘것없는 일상까지도
기억이란 필터를 거치고 나면, 흐뭇해진다.
기억이란 늘 제멋대로여서
지금의 나를 미래의 내가 제대로 알 리 없다.
먼 훗날 나는, 이 때의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15부
은호 : 만약에, 내가 그 서류 구청에 갖다 내면 어떡하려 그랬어요?
영인 : 포기했을 거예요. 난 나중에 후회 안 할 만큼, 마지막까지 발버둥 쳐본 거예요.
         중간에 그만 두면 두고두고 납득하지 못해요. 후회가 길어지죠.
         안 그래요?
         한 번쯤 발버둥 쳐봐요. 
         모양새는 우습더라도, 그게 나을 때도 있어요.

변명조차 생각나지 않는 순간이 있다.
오직 후회만이 허락되는 순간이 있다.
후회하고 후회하고, 죄책감이 바래질 때까지 후회하면서 잊을 수도 없는 순간이 있다.
모든 것을 알아버린 지금의 내가 그 시간을 반복한대도 어쩔 수 없는 순간이 있다.


16부
은호 : 이러기엔 너무 늦었어. 선택하려면 훨씬 전에 했어야 했어.
동진 : 지나고 난 다음이니깐 그런 생각이 드는 거야.
         나중에 한참 지나고 나서 지금을 돌아보면 그 땐 어떤 생각이 들 것 같애?
         그 때도 그렇게 생각할 것 같애? 지금은 너무 늦어서라고?

지금 이 시간도 지나고 나면 기억이 된다.
산다는 것은 기억을 만들어가는 것.
우리는 늘 행복한 기억을 원하지만 시간은 그 바램을 무시하기도 한다.
일상은 고요한 물과도 같이 지루하지만
작은 파문이라도 일라치면 
우리는 일상을 그리워하며 그 변화에 허덕인다.
행운과 불행은 늘 시간 속에 매복하고 있다가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달려든다.
우리의 삶은 너무도 약하여서 
어느날 문득 장난감처럼 망가지기도 한다.
언젠가는 변하고, 언젠가는 끝날지라도
그리하여 돌아보면 허무하다고 생각할지라도
우리는 이 시간을 진심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슬퍼하고, 기뻐하고, 애닳아하면서.
무엇보다도 행복하기를 바라면서.
고통으로 채워진 시간도 지나고,
죄책감 없이는 돌아볼 수 없는 시간도 지나고,
희귀한 행복의 시간도 지나고,
기억되지 않는 수많은 시간을 지나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우리는 가끔 싸우기도 하고, 가끔은 격렬한 미움을 느끼기도 하고,
또 가끔은 지루해 하기도 하고, 
자주, 상대를 불쌍히 여기며 살아간다.
시간이 또 지나 돌아보면, 이 때의 나는 나른한 졸음에 겨운듯
염치없이 행복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가 내 시간의 끝이 아니기에
지금의 우리를 해피엔딩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
여러가지 의미로 내게 있어 또 하나의 최고의 드라마로 기억된 연애시대.
은호의 피클신은, 힘들 때마다 계속 떠오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