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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KING/드라마

드라마ㅣ 하얀 거탑

pencilk 2007. 3. 15. 05:45

지금까지 내가 본 일본 드라마 중 스토리, 편집, 음악,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까지 모든 부분에서 단연 최고로 꼽는 작품은 <하늘에서 내리는 1억 개의 별>이다. 처음 그 드라마를 봤을 때, 사전 제작이라는 일본의 드라마 제작 시스템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게 3여 년 전의 일이었던가.


그 사이 한국의 드라마 제작 시스템도 많이 변했다. <네멋대로 해라> 이후로도 내가 '참 잘 만들었다'라고 생각한 드라마는 은근히 꾸준히 있었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내 이름은 김삼순>, <연애시대>, <환상의 커플>까지. 특히 <연애시대>와 <환상의 커플>은 시간에 쫓겨 대본이 나오고 PD가 방송 10초 전에 편집한 테입을 세이프 시키던 예전의 제작 시스템이 외주 제작이라는 형태로 변함으로써 드라마의 완성도를 한층 높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2007년도에 <하얀 거탑>이 나왔다.
공포물도 아니고 미스테리물도 아닌데 매회 이렇게 긴장하고 또 감탄하며 본 드라마는 처음인듯. 탄탄한 스토리와 대본, 배우들의 연기, 카메라 앵글, 그리고 드라마의 분위기를 정말 잘 살린 환상적인 OST까지.


알다시피 <하얀 거탑>이 흔한 멜로 드라마도 아니고 시종일관 긴장감을 유지하는 의학 드라마에 법정 드라마적 성격까지 띠고 있는데, <하얀 거탑>의 OST는 그러한 드라마에 너무나 잘 어울리게 웅장하고, 세련되고, 또 애잔하다. 클래시컬한 instrumental곡들은 내가 아는 한 한국 드라마 OST 중 단연 최고라고 생각하고, 이미 귀에 익숙한 곡을 편곡해 바비킴이 부른 '소나무' 역시 정말 좋은 곡.


사실 난 <하얀 거탑>을 처음부터 챙겨보지는 못했는데, 재판이 시작되던 때부터 봐서 장준혁이 정말 처음부터 나쁜 놈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1편부터 찬찬히 보면서 느낀 장준혁은, 그저 그 역시도 사회에서,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일 뿐이었다. 보통의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비상할 정도의 실력을 갖춘 천재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면서도 넉넉지 못한 가정환경과 시골에 계신 홀어머니라는 응어리가 그를 '천재 외과의사' 정도에서 멈출 수 없게 만들었다.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사회생활에서 살아남는 건 '실력'이 아닌 '센스'라고 말하던 친구의 말처럼, 장준혁은 오히려 실력이 지나치게 뛰어나서 주위로부터 시기를 받지 않을 수 없는 위치였고, 그렇기 때문에 조직생활에 필요한 그 '센스'를 다소 과도하게 발휘할 수밖에 없었다. 변해갈 수밖에 없었던 그를, 이해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솔직히 나는 장준혁처럼 주도면밀하게, 때로는 야비할 정도로 조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머리를 회전할 재주도 없지만, 그렇다고 최도영이나 유미라, 염동일처럼 행동할 자신은 더더욱 없기에.


<하얀 거탑>의 제작 발표회에서였던가. 안판석 PD가 그런 말을 했다. 장준혁에 대한 심판은 시청자들이 내리는 거라고. 물론 드라마 상 판결은 장준혁의 패배로 끝났지만, 그는 죽을 때까지 자신의 수술은 완벽했다고 생각했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남긴 것이 자신의 시신을 기증한다는 글과 함께 상고 이유서였다는 것이 장준혁이라는 인물을 너무나 잘 보여준다.


그런 생각을 했다. 장준혁이라면 그럴 수 있겠구나. 자신이 몸 담았던 의학이라는 분야에서만큼은 언제나 최고였고, 또 단 한순간도 자신을 믿지 않은 적이 없었던 천재 외과의사 장준혁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 물론 권순일 환자의 일은 분명히 장준혁이 잘못을 한 것이지만.



앞부분까지 다 보지 못했을 때는 나 역시 재판 시작 때부터 봤기 때문에 그저 장준혁이 천하의 때려죽일 나쁜 놈이고 최도영은 정의의 천사인 줄 알았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최도영이 더 짜증난다, 부인이랑 자식 생각은 안 하냐, 진짜 이기적이다, 혼자 고상한 척은 다 한다, 등의 글을 봤을 때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누가 감히 장준혁은 이기적인 인물이고 최도영은 이타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장준혁도 최도영도, 내가 보기엔 둘 다 그저 평범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그렇게 이기적인 사람들일 뿐이다. 각자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다른 사람의 말은 들으려고 하지 않고 그저 자기 고집만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두 사람 다 이기적이다. 하지만 이기적이지 않은 인간이 어디 있는가.



이렇게까지 길게 주절거릴 생각은 아니었는데, 결국 또 길어졌다.
아무튼 <하얀 거탑>에서 김명민의 연기는 정말 최고였다. 말 그대로 김명민은 없고 장준혁만 있었다. 촬영을 끝내고 나서 장준혁이 그렇게 생을 마감해야 했다는 것이 억울해서 쉽사리 장준혁을 떼어내 버리지 못하고 멍하니 창밖만 보고 있었다던 김명민씨. 그저 드라마를 봤을 뿐인 나도 이런데 연기를 한 당사자는 어떻겠는가. 기사 보다가 안 건데, 일본 원작에서 장준혁 역을 연기했던 일본 배우는 촬영을 끝내고 마지막회가 방송되기 전에 자살을 했단다. 그만큼 장준혁이라는 인물이 헤어나오기 힘든 그 무엇을 갖고 있다는 뜻. 김명민씨는 <꽃보다 아름다워>에서 처음 보고 반했었는데, 오랜만에 보는 그의 연기는 나를 팬의 길로 인도하는구나;



<하얀 거탑>에서는 특히 음악과 함께 카메라 앵글이 참 좋았다.

눈동자 굴러가는 것부터 시작해서 눈가 주름의 미세한 움직임까지 잡아내는 엄청난 클로즈업 컷부터, 말하는 사람의 정면이 아닌 오히려 뒷통수를 잡는 카메라 앵글, 대화하고 있는 두 사람을 평범하게 풀샷이나 체스트 샷으로 옆에서 잡는 것이 아닌 한 사람의 어깨너머에서 잡는 앵글 등, 과감하고 부지런한 카메라의 움직임은 <하얀 거탑>의 백미다.

사실 하얀거탑에서 김명민과 함께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 사람은 김창완씨라고 생각한다. 특히 클로즈업에서 눈가 주름 하나하나까지 미세하게 연기하시는 분. 이선균씨는 목소리가 정말 좋고.


그나저나 드라마 끝나고 나서야 처음부터 제대로 보고서 다 늦게 빠져들어 거탑갤 짤 같은 거 보면서 낄낄거리며 완전 뒷북치고 있다; 이런;


 



1. 하얀거탑  *
2. The Great Sungeon  *
3. Pavilion  *
4. 날개        
5. 소나무  / 바비 킴 (Bobby Kim)  **
6. Green Winter        
7. La Voie De La Justice  **
8. 체온  / 장혜진        
9. 비명 / Monday Kiz (먼데이 키즈)        
10. Last Stand        
11. 아직 수술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대사)        
12. B Rossette 
13. 최교수... (대사)        
14. 小醫治病 中醫治人 大醫治國        
15. 설명 좀 해주세요... (대사)        
16. 바보산수        
17. 의사 가운 벗길 수 있다는 것 아나? (대사)        
18. 하얀슬픔        
19. 오빠! 희재가 누구야?        
20. 수술은 여기서 내가 통제하겠네! (대사)        
21. Doct To Mucosa        
22. In Honou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