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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THINKING/영화 (40)
pencilk
살아가면서 '지금 이 순간이, 내 생애 있어서 최고의 순간이 될 것이다'라고 느껴본 적이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고등학교 시절,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너무 즐거워서 어쩔 줄을 몰랐을 정도로 좋아했던 친구들이 있었다. 남에게 눈물을 보이거나 울고 있다는 걸 들키기 싫어서 슬픈 영화를 볼 때 눈물이 흘러도 닦지조차 않는 내가 품에 안겨서 엉엉 울 수 있었던 친구들이었고, 크리스마스날 어머니의 외출 금지령으로 집에서 나갈 수 없었던 나의 방 창문 밑에 일렬로 서서 컨츄리꼬꼬의 '크리스마스'를 부르며 춤을 춰 나를 웃다 쓰러지게 만들었던 친구들이었다. 그 친구들과 만들었던 추억들이, 그 친구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너무나 행복해서, 그렇게 생각했었다. 이 친구들이 영원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들이 살..
지루한 일상 속에 던지는, 커피 향처럼 달콤하고 담배 연기처럼 씁쓸한 농담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풍경 속에 항상 필수 조건처럼 같이 등장하는 것이 커피와 담배다. 커피와 담배만큼 몸에 해롭다는 걸 알면서도 끊기 힘든 기호품도 없다. 이 중독성 강한 두 기호품은 오랜 시간 동안 인류의 친구인 동시에 적이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웰빙 바람과 함께, 오랜 ‘적과의 동침’에 마침표를 찍고 그 대신 ‘적과의 전쟁’을 선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금연빌딩이 점점 많아지고 커피 대신 녹차나 석류즙처럼 몸에 좋은 음료들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이제 더 이상 공중파 TV 드라마 속에서는 멋있게 담배를 피워 무는 배우를 볼 수 없는 시대인 것이다. 이렇게 공공의 적으로 몰리고 있는 커피와 담배에게 그래도 우리는 좋..
사랑니는 선생과 제자, 서른살의 여자와 열일곱의 고등학생의 사랑이라는 어찌 보면 굉장히 뻔할 것 같은 설정을 갖고 있다. 하지만 영화는 뻔하게 흘러가지 않고 누구나가 머릿 속으로 쉽게 그려봄직한 선생과 제자의 러브 스토리를 배신하며 허를 찌른다. 이 영화는 뜻하지 않게도, 기억에 관한 영화다. 상대방을 통해 끊임없이 다른 누군가를 떠올리는 주인공들. 하지만 그 역시도 희미하게 퇴색해버린 기억의 한계로 인해 모두 착각이었음을 깨닫기까지. 누구나가 소중하고 아름답게 간직하기 마련인 첫사랑의 기억조차도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머릿속에서 수없이 꾸며지고 만들어져간다. 그렇게 변해버린 기억 속의 첫사랑은 더 이상 실제로 있었던 일이 아닌 자신만의 '환상'이 된다. 흔히 생각하는 선생과 제자의 사랑이라 하면, 어린 ..
일본에 있으면서 한창 화제가 될 때 보지 못해서 아쉬웠던 영화. 엄청난 뒷북으로 이제서야 보게 됐지만, 한편으론 친절한 금자씨의 프로모션이 시작될 찰나에 일본으로 가버린 덕분에 포스터 한 장 보지 못한 상태로 영화에 대한 어떤 사전 정보도 없이 볼 수 있었다. 친구 말로는 초반의 '너나 잘 하세요' 같은 장면은 예고편 등으로 너무나 많이 보여줬다는데, 나는 그런 것들을 전혀 접하지 못한 상태에서 봤기 때문에 더더욱 친절한 금자씨에서의 이영애가 그저 신기하고 재미있고 그랬다. 말 그대로 이 영화는 박찬욱의 영화라기보다는 이영애의 영화다. 한창 촬영하던 중에 박찬욱 감독이 인터뷰에서 '이영애이기 때문에 낯선 표정, 이영애이기 때문에 웃겨지고 마는 장면들이 많아서 이영애 본인도 당황하고 찍는 우리도 즐겁다. ..
이 영화 역시 원작인 만화를 전혀 안 봤으므로 원작과의 비교는 불가능하나, 원작을 본 주위의 반응을 보니 극단으로 갈리는 듯. 일단 스토리는 만화의 굉장히 앞 부분 정도밖에 진행하지 못한 듯 싶고 내년에 속편이 나온다는 듯도 하고. 아무튼 만화를 모르는 상태에서 본 NANA는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일단 나카시마 미카와 미야자키 아오이가 각자의 캐릭터에 너무나 잘 어울렸고, Hyde가 작곡한 Glamorous Sky라든지 눈 덮힌 홋카이도의 배경, 두 사람이 사는 집 등의 무대 세트나 소도구 등이 볼만 했기에. 하지만 영화 자체도 중반부를 넘어서면서부터는 나카시마 미카에 집중되어 있기도 했고, 나 역시 나카시마 미카의 이야기밖에 기억에 안 남았다; 일단 하치의 캐릭터 자체가 내 성격상 절대 공감할 수는 ..
이 영화는 작년에 오카다 준이치가 진지한 연기를 한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싶어서 찾던 중에 발견했었다. 그리고 마츠모토 준도 나온다는 것을 알고 솔직히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쟈니스에서 2명이나 나오는 영화, 라는 것에 나도 모르게 어느 정도 선입견을 가졌던 듯. 영화 감독에 대해 아는 게 없었고, 원작이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이라는 것도 몰랐기에. 그리고, 큰 기대 없이 보았기 때문이었을까. 영화는 기대 이상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영화가 기대 이상이었던 것은, 주인공인 토오루와 시후미의 이야기기가 아닌, 코지와 키미코의 이야기 때문이었다. 진짜 서로를 사랑한 것은 토오루와 시후미 쪽이다. 스페셜 영상에서 마츠모토 준이 말했듯이, 토오루는 시후미를 좋아하는 것이지만, 코지는 키미코를 좋아하는..
소풍을 떠난다. 자기 자신에 갇혀서, 어느 한 기억에 갇혀버려서, 세상과 소통할 수 없었던 그들이 세상의 끝을 보기 위해 소풍을 떠난다. 이 세상이 끝날 때에는 바다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싶어서.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 그들은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환자들일 뿐이다. 그래서 한 번은 경찰에게 잡힐 뻔도 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그것은 말 그대로 '소풍'이다. 지구 종말을 예언하는 소리를 어디서 주워듣고 세상이 끝날 때 바다에서 구경하자면서 도시락까지 싸들고 나선 즐거운 picnic일 뿐이다. 세상은 그들을 뜻하지 않게 죄를 짓게 만들었고 그로 인해 그들은 상처받았다. 하지만 상처받은 그들을 세상은 다시 정신병원이라는 틀에 가두어버렸다. 그래서 그들은 담장 위만을 걷는 소풍을 떠난다. 담장 위라는 공간은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