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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THINKING/영화 (40)
pencilk
역시 책과 영화는 각각의 장점이 있는 것 같다. 책을 영화화한 것들은 대부분 사람들에게 실망을 주는 경우가 많은데, 나에게는 냉정과 열정 사이도 그랬다. 아마도 책을 보고서 각자 감동을 받는 부분이 다르고 각자가 상상한 것들이 다르기 때문일 거다. 나는 본의 아니게 블루와 로소를 연이어 보지 못하고 블루를 읽고 한참 후에 로소를 읽었다. 일단은 영화 주인공들이 내가 생각했던 이미지와 너무 안 맞았다. 특히 아오이와 마빈. 내가 상상했던 아오이는 훨씬 더 메마른 눈동자를 가지고 있고 좀 더 표정이 없는 여자였다. 오히려 준세이 쪽은 약간은 아저씨틱한 모습으로 상상했었는데 (왜인지는 모르겠다) 영화에서 다케노우치 유타카는 내가 상상했던 준세이보다 너무 멋있었다. 나는 블루보다는 로소가 더 와닿았었다. 스토리..
사막, 두 개의 해, 홀로 남겨진 두 여인, 고장난 coffee machine, 아기의 울음 소리, 아무도 듣는 이 없는 피아노 선율, 벽에 걸려있는 낡은 그림, 아무 것도 없는 거리 위에 덩그러니 서있는, 손가락으로 흝으면 금방 검정이 묻어나오는 먼지 속의 주유소 까페. 가족, 그리고 가족과도 같은 사람들, 너무 화목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견딜 수 없는 한 여인, 세상 모든 것이 붉게 물드는 지독하게 새빨간 저녁 노을, 던지면 반드시 돌아오는 부메랑, 낯설음에서 익숙함으로, 그리고 소중함으로 이어지는 마음, 그리고 magic. 마치 붉은 셀로판지를 갖다댄 듯한 바그다드의 저녁에 꼭 한 번쯤은 지나치게 진한 그 커피를 마셔보고 싶은, 그런 까페. 영화의 줄거리는 따스했지만, 내게 이 영화는 붉었다. 간간이..
선데와 DVD방에 갔는데 그 DVD방이 너무 볼 게 없어서 30분을 고민하다가 고른 것이 Together였다. 첸 카이커 감독 영화니 괜찮겠지- 하는 믿음도 있었다. 사실 스토리만 생각하면 너무 전형적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특이한 것도 아니다. 훌륭한 연주, 명예와 돈, 둘 중에 명예와 돈을 선택하고 유교수와 살면서 나는 샤오천이 점점 아버지에게 못되게 굴 줄 알았다. 한참 그러다가 나중에서야 정신을 차린다거나, 뭐 그런 식으로 흘러갈 거라는 예상은 깨졌지만, 결국 아버지께 돌아간다는 것은 맞았다. 영화 스토리는 그다지 기억에 남거나 하지 않지만, 그저 마지막 몇 분 동안의 장면이 가슴에 박혀버렸다. 기차역에서 울면서 연주하던 샤오천의 표정과 정신없이 휘몰아치던 Violin Concerto In D의..
우리 다시 시작하자. 춘광사설春光乍洩, 봄빛이 잠깐 새어나오다. 영어 제목 Happy Together. 그리고 포스터에 적혀있는 글귀는 A Story About Reunion.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영화는 '다시 시작한다는 것'에 관한 영화다. 실제로도 영화는 "아휘, 우리 다시 시작하자"라는 보영의 대사로 시작한다. 그냥 시작하는 것과 '다시' 시작하는 것은 분명 다르다. 보영과 아휘는 라틴 아메리카인이라면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다는 이과수 폭포에 가려다가 길을 잃고 만다. 교통이 발달해있어서 가는 길이 쉬울 뿐만 아니라 그 크기의 거대함으로 인해 몇 km 밖에서도 소리가 들린다는 이과수 폭포를 찾지 못하는 그들은 곧 희망을 잃었음을 뜻한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아직 희망이 남아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누구나 일생에 한 번쯤은 사랑하는 사람이 불행에 처한 걸 보고 이렇게 기도합니다. "기꺼이 돕겠습니다, 주님." 그러나 필요할 때 사실 우리는 가장 가까운 사람을 거의 돕지 못합니다. 무엇을 도와야 할 지도 모르고 있으며 때로는 그들이 원치 않는 도움을 줍니다. 이렇게 서로 이해 못하는 사람과 산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 해도 우린 사랑할 수는 있습니다. 완전한 이해 없이도 우리는 완벽하게 사랑할 수 있습니다. - 흐르는 강물처럼 중에서 + 뒷통수를 치는 대사였다. 언제나 사람이 사람을 완벽하게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벽의 존재는 그 어떤 대화, 심지어 사랑의 힘으로도 극복하기 힘들 것이라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역으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완벽하게 이해할 ..
사실 처음부터 제목이 주는 아이러니에 고개를 갸우뚱했었다. '살인'과 '추억'이라니. 무언가 모순이 아닌가-하는 생각. 그리고 시카고를 보러 가서 예고편을 보았을 때,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건 그저 스릴있고 미스테리한 '연쇄살인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바로 영화의 카피 때문이었다. 감독이 직접 쓴 카피일까. 정말 난 이 카피 때문에 영화를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쇄살인이 무슨 뜻인지도 몰랐습니다. 범인도 아닌 분들 너무 많이 때렸습니다. 금방 끝날 줄 알았습니다. 잡은 줄 알고 기념사진도 찍었습니다. 능력도 없으면서 너무 열심히 뛰었습니다. 미치도록 잡고 싶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범인이 끝내 잡히지 않은 연쇄강간살인사건이 추억이 된다? 그것은 살인사..
이제 영화에서 말하고자 했던 주제와 상관 없이 지극히 주관적인 어떤 감성에 의해 우울해졌던 어제의 기분을 털어내고 이야기해보려 한다. (그래봤자 객관적일 리도 없거니와 정말 박찬옥 감독의 의도에 맞게 해석했는 지도 알 수 없지만.) 박찬옥 감독이 이야기하고자 했던 '광의의 질투'에 대해서. (사실 내가 우울했던 건 원상이라는 캐릭터에게 뒤통수를 맞는 듯한 느낌 때문이었는데, 그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인정하기가 못내 싫고 아직도 도망가고만 싶다. 아무튼 여기에 대해선 더 이상 길게 얘기하지 않을련다.) 영화는 남녀 사이의 질투뿐만이 아닌 광의의 질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누군가와 자신을 비교하고, 질투하고, 그러면서 그것이 자신을 망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힘이 되는 것. 원상에게 편집장의 존재는 질투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