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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WRITING/YES24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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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밀란 쿤데라 저/이재룡 역 민음사 | 1990년 08월수능을 치르고 피곤에 지쳐 있을 후배들은 '이제부터 내 세상이다', '어른들의 간섭 받지 않고 마음껏 놀고 말 테다' 하는 생각들을 갖고 있겠지만, 이제 곧 대학생이 될 그들에게 나는 그 어떤 책보다 심오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책들을 추천하고 싶다. 그 이유는, 그러한 책을 읽고ㅡ또는 읽으려고 시도라도 하고ㅡ 이해하기 위해 고민하고 괴로워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기가 바로 대학생 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첫장부터 니체의 회귀사상을 언급하며 가벼움과 무거움에 대하여 논하기 시작하는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결코 쉽게 책장이 넘어가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매번 몇 페이지 못 읽고 엎드려 잘 때 베고 자는 베..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공지영 저 김영사 | 2001년 07월영혼의 존재를 믿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신의 존재는 믿지 않는다. 다만 종교라는 것으로 인해 마음의 평화를 얻는 이들이 있다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다. 하느님이나 부처님은 내 가슴은 울리지 못해도, 좋은 스님들이나 수녀님들, 목사님들이 내 가슴을 울릴 때는 있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이다. 오랜 시간 하느님을 멀리하다가 어느 날 문득 다시 하느님께 돌아왔다는 공지영의 몇 달에 걸친 유럽 수도원 기행은 종교가 없는 나에게는 전부 이해하기는 힘든 것이었지만, 공지영이 수도원에서 만난 사람들과 많은 상념들, 그리고 그녀가 쏟아낸 문장들은 내 가슴을 울렸다. 읽고 있는 동안 마음이 정갈해진다는 느낌이 드는 책이었다. YES24 도서팀 블로그 - '..
뉴욕김영주 저 컬처그라퍼 | 2008년 05월 1. 그러나 이것은 행복이라든가 불행이라든가 하는 것을 계산하는 것은 아니었다. 말하자면 나는 내가 행복하다고도 생각할 필요가 없었고 그렇다고 불행하다고도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그날을 그저 까닭 없이 펀둥펀둥 게으르고 있으면 만사는 그만이었던 것이다. 내 몸과 마음에 옷처럼 잘 맞는 방 속에서 뒹굴면서 축 처져 있는 것은 행복이니 불행이니 하는 그런 세속적인 계산을 떠난, 가장 편리하고 안일한, 말하자면 절대적인 상태인 것이다. 나는 이런 상태가 좋았다. - 이상의 중에서 세상 물정의 발꿈치만큼도 모르면서 어른들의 복잡 미묘한 심리를 다 이해할 수 있다고 착각했던 10대 중반, 나는 이상의 『날개』를 읽고 '권태'라는 감정이 어떤 건지 드디어 구체화시..
백수생활백서박주영 저 민음사 | 2006년 06월대학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머지않아 그야말로 진짜 백수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오던 때, 제목에 이끌려 읽었던 책이다. 주인공 서연은 책 읽을 시간을 뺏기고 싶지 않아서 스스로 백수를 선택한다. 자신이 백수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도,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하지도 않으며 그저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읽기 위한 시간과 책을 살 수 있을 정도의 경제적 여유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돈이 필요하면 잠깐씩 아르바이트 정도만 한다. 읽으면서 처음에는 그렇게 편하게 사는 서연이 부럽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동시에 나는 절대 서연처럼 완벽한 백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절감했다. 이런 생활이 잠깐 동안이면 더할 나위 없이 편하고 행복하겠지만, 평생을 이렇게 ..
뉴욕 3부작폴 오스터 편/황보석 역 열린책들 | 2006년 02월우연으로 시작해 혼란으로 끝을 맺는 세 편의 중편을 담고 있는 폴 오스터의 『뉴욕 3부작』. 추리소설 혹은 탐정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책은 그 어떤 추리소설에서도 볼 수 없었던 '뒤통수가 얼얼한'(여러 가지 의미로) 결말을 보여준다. 문장 자체가 난해한 것은 아니나 술술 읽히지는 않는 편인 이 글을 심혈을 기울여 읽어 내려가면서 글을 이끌어 가는 화자와 작가, 실제와 환상 사이에서 독자들이 혼란스러워 하는 틈을 타, 폴 오스터는 예상치 못했던 ‘진실’로 팔, 다리, 손가락 끝, 발가락 끝까지 피가 빠져 나가는 듯한 놀라움 (혹은 황당함 또는 허무함)을 선사한다. YES24 도서팀 블로그 - '테마책방' 원문 : http://blog...
호텔, 마다가스카르Jin 글,사진 시공사 | 2008년 04월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로 떠난 진이의 달콤한 여행기. 한국에 있을 때는 자신이 그리 예쁘지도, 주위 사람들에게 인기도 있지도 않다고 생각했던 그녀가, 마다가스카르 섬에서는 모두가 좋아하는 사랑스러운 여인이 된다. 매일 반복되는 똑같은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곳에서 만나는 낯선 풍경, 낯선 사람들, 그리고 새롭게 발견하는 낯선 나 자신의 모습까지, 온통 낯선 것들에 둘러 싸일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여행의 가장 큰 묘미일 것이다. 사흘 내내 버스를 타고 울퉁불퉁한 길을 달리면서 바퀴벌레와 함께 잠들어도, 그 길 끝에서 만난 마다가스카르의 아름다운 풍경과 그곳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은 마치 마법처럼 진이를 변화시킨다. 낯선 길을 향해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은희경 저 문학동네 | 1998년 11월이 책의 어느 부분쯤인가에서, 주인공 진희는 스스로에 대해 담담하게 고백한다. 집착 없이 살아오긴 했지만 사실은 아무리 집착해도 얻지 못할 것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짐짓 한 걸음 비껴 걸어온 것인지도 모른다고. 그의 연인은 그녀가 강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녀는 언제나 잘못될 경우를 대비하여 자신을 완전히 던지지 않을 뿐이라고. 그리고 그의 연인이 그녀를 강하다고 생각할 수록 그녀는 더욱 그 앞에서 강하게 보이려고 의식할 것이고, 결국 그가 사랑하는 것은 그녀가 보여주는 작위적인 '나'일 뿐이므로 아무리 그가 그녀를 사랑해도, 자신은 그의 사랑을 믿지 않을 거라고. 지나치게 공감이 되어서 화가 났고, 또 한편으로는 서글플 정도로 안타까웠던 주인공..
어린 왕자생 텍쥐페리 저/김화영 역 문학동네 | 2009년 08월솔직히 고백하자면 어렸을 때 이 책을 제대로 이해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묘하고 깊게 남는 여운에,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진정한 주제가 무엇인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쓰다듬고 또 쓰다듬으며 몇번이고 다시 읽곤 했던 책이다. 책 속의 삽화가 예뻤던 것도 한 몫 했다. 그리고, 실제로 인간과 인간 사이의 '길들여짐'과 '익숙함', 그리고 '길들여진 후에 찾아오는 헤어짐' 같은 문제들로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할 것처럼 혼자 힘들어 했던 열아홉 살 때 유일한 위안이 되어준 책이기도 했다. 지금은 한국어판, 영어판, 일본어판 등 여러 나라의 『어린왕자』뿐만 아니라, 삽화의 색감이나 책 판형이 조금씩 다른 『어린왕자』들을 여럿 책장에 모셔두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