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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 문학과 문학 - 김영하, 『비상구』

pencilk 2004. 7. 5. 01:35
‘X세대’ 운운하는 말들이 생겨나기 시작하면서부터였을까. ‘세대 차이 난다’라는 말이 등장하면서부터 어른들의 입에서 떠나지 않는 소리가 있다. 바로 ‘요즘 젊은 것들은…’하는 소리다. 언젠가부터 젊은이들은 잘못된 정치에 대해 투쟁하지도 않고 고귀한 사랑을 믿지도 않기 시작했다. 90년대에 ‘X세대’라는 말과 함께 엄청난 유행을 불러 일으켰던 ‘난 나야’라는 말처럼 소위 개성을 중시하는 붐이 일었다.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이 그들에게는 훨씬 더 ‘개성적’인 것이다. 

<비상구>의 주인공들은 바로 그 90년대의ㅡ그 중에서도 좀더 키치적인ㅡ 젊은이들이다. 주인공 우현은 일정한 거처도 없고 이렇다 할 직업도 없다. 그렇다고 미래에 대한 꿈이나 희망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오토바이 타고 장난칠 때도 지났고 삐끼질 할 짬밥도 아니다. 조직에 들어가서 허리 굽히고 살기도 싫고 집구석으로 들어가는 건 더 좆같다. 이 소위 ‘양아치’인 주인공은 자신이 생각하기에 더럽고 추한 사회 속으로 들어가기를 거부하며 스스로를 사회로부터 단절시킨다. 사회가 요구하는 일정한 학력과 어른들이 요구하는 착실한 젊은이로서의 삶이 싫다는 이유로 사회로도, 가정으로도 갈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현실을 괴로워하거나 슬퍼하지도 않는다. 그냥 다 좆같을 뿐이다. 비정한 일상을 하루하루 견뎌가지만 결코 사회에 타협하거나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몰락한 영웅의 모습은 홍콩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하다.

그런 주인공이 유일하게 집착하고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 이름도 안 나오는 여자애의 성기다. 여자애의 배꼽 밑에는 화살 문신이 있다. 화살표만 있고 하트는 없다. 하트를 그리려고 했을 때 남자의 아버지가 왔기 때문이다. 결국 기성세대에 의해서 ‘사랑’은 빠지고 화살표만이 남았다. 우현은 허벅지에 다른 남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여자애를 만나면 운수대통이라고 말한다. 사랑은 빠지고 섹스만이 남았다. 그것은 그들 나름대로의 사회에 대한 반항이고 일탈이다.

우현은 여자애의 성기를 ‘비상구’라고 이름 붙이고 여기에 집착한다. 그에게는 그곳이 진짜 비상구처럼 일상의 해방 통로다. 그리고 보다 깨끗하게 닦기 위해 비상구의 털을 깎게 하고는 구겨져 있었던 비상구를 어렸을 때의 판판한 모습으로 다려준 것이니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초경했을 때의 기분이라는 여자애의 말이나 비상구에서 봄 된장찌개, 나물 냄새가 난다는 우현의 생각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면서 우현은 자신 역시 나이를 먹음으로써 어딘가가 구겨져 있음을 인정한다. 털을 막 다 깎았을 때 우현이 이상하게 눈물이 났던 것은 한 때는 자신도 순수하고 꿈이 있었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 떠올라서였을까. 겉으로는 냉소적이지만 마음 속 깊숙이에는 아무 것도 몰랐던 그 때로 돌아가고 싶은 회귀 본능이 그를 비상구에 집착하게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그 비상구를 모욕한 사회에 반항하여 우현은 퍽치기를 하고 다시 쫓기기 시작한다. 하지만 소설의 끝은 그가 잡힐지, 또는 무사히 도망칠 지를 보여주지 않은 채 결말을 유기해버린다. 결국 종식이 우현의 이름을 불어버렸으니 감동적인 사나이의 의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눈물겨운 사랑의 이별 같은 순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우현은 그저 또 다시 사회로부터, 기성세대로부터 도망칠 뿐이다. 김영하는 그런 우현이 불쌍하다고도, 또는 멋있는 영웅이라고도 말하지 않는다. 그저 그렇게 유기된 채의 주인공을 이야기하고, 보여주고, 내버려둘 뿐이다. 

이처럼 김영하의 글은 그 동안 소위 하위문화라 폄하되어온 대중문화를 담고 있다. 소위 ‘양아치’를 등장시킴으로써 기성문화나 윤리, 가치로부터 배격당해 온 문화를 그린다. 그들이 양아치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기존의 가치나 체제에 적응하지 못했거나 그것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즉 양아치들이 생겨난 것은 사회 때문이다. 이처럼 <비상구>는 일탈적 등장인물들을 통해 부조리하고 더렵혀진 현실을 비판함과 동시에, 그렇게 시시껄렁하고 별 거 아닌 것, 그것이 바로 인생이라고 말하고 있다. 다행히 타넘을 지붕은 얼마든지 있다. 우현은 아마도 계속해서 사회로부터 도망칠 것이고 또 다른 여자애로부터 비상구를 찾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현의, 어쩌면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삶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