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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1000엔 도쿄

도쿄를 걷다 2 – 시부야에서 하라주쿠까지

pencilk 2006. 9. 27. 21:33

교환학생으로 도쿄에 가기 전 해 여름, 킴스는 일주일간 일본 여행을 갔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1년 후 도쿄에서 거주하게 될 거라곤 생각도 못 하고,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 일본 여행이 될 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너무 준비를 안 하고 가는 바람에 온갖 뻘짓은 다 하고, 남들 다 보고 오는 건 못 보고 아무도 안 보고 오는 것만 보고 왔다. 가장 큰 원인은 일본의 지하철 시스템에 대한 이해 부족이었다.

 

일본의 지하철 노선도는 정말 복잡하다. 서울 지하철과는 비교도 안 된다. 시부야 역 하나에 지나가는 지하철 노선만 토요코선(東横線), 덴엔토시선(田園都市線), 이노카시라선(井の頭線), 긴자선(銀座線), 한조몬선(半蔵門線), 그리고 JR까지, 무려 6개다. (게다가 JR은 하나의 노선이 아니라 그 안에서 또 야마노테선, 중앙선 등 여러 노선으로 또 나뉘어져 있다. 킴스는 처음에 JR이라는 게 하나의 노선인 줄 알았다가 완전 미아 될 뻔 했다;) 이렇게 많은 노선이 지나가다 보니 시부야 역은 JR 시부야 역과 이노카시라선 시부야 역, 이렇게 두 개다. 물론 두 역은 어떻게든 터널로 연결되어 있긴 하지만 겉에서 보면 엄연히 두 개의 건물이다. 게다가 이노카시라선을 제외한 5개 노선이 지나가는 JR 시부야 역은 그 규모 역시 엄청나다. 어느 출구로 나오냐에 따라 전혀 다른 곳이 나온다. 그러니 일본 여행 초보자들끼리 따로 여행하다가 나중에 시부야 역 앞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정했다간, 각자 다른 시부야 역의 출구로 나와서 하염없이 서로를 기다리는 불상사가 생길 수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시부야의 스크램블 교차로로 나오기 위해서는 하치코(ハチ公) 출구로 나와야 한다. 하치코는 JR 시부야 역 앞의 작은 광장이다. 시부야에서 약속을 잡을 때 대부분 이 하치코에서 만나기 때문에 이 곳은 항상 사람들로 북적댄다. 뭐 기본적으로 시부야 전체가 어딜 가나 사람들로 북적대지만.




미로 같은 시부야 길의 시작.

사진에 보이는 HMV라고 쓰여진 건물에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100엔 스시집이 있다. 참고로100엔 스시라는 건 배 터지도록 먹고도 100엔이라는 것이 아니라, 회전스시 한 접시당 100엔이다. 그리고 한 사람당 반드시 7접시 이상 먹어야 한다. 즉, 적어도 700엔 이상은 든다는 뜻.

 

시부야(渋谷)에서 하라주쿠(原宿)까지는 굉장히 가깝기 때문에 걸어서 가는 것이 좋다. 하지만 상세한 지도가 없는 여행자들은 그냥 안전하게 다시 시부야 역으로 돌아가서 JR 야마노테선을 타고 하라주쿠로 가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킴스 역시 처음 여행 갔을 때는 지하철을 타고 하라주쿠에 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걸어서 거의 하라주쿠까지 다 가놓고는 다시 시부야 역으로 돌아가서 지하철을 타고 간 셈이었다;

 

시부야 자체가 워낙 길이 미로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골목골목 돌아다니다 보면 어느 순간 방향 감각을 잃어버릴 수 있다. 그냥 머릿속으로 ‘방금 이렇게 꺾었으니 이 쪽으로 돌아가면 아까 그 길이 나오겠지’ 생각하고 가보면 전혀 딴 길이 나오곤 한다. (참고로 킴스는 결코 길치는 아니다.) 심지어 킴스는 시부야에 있는 학교를 1년간 다니고도, 몇 번이나 시부야 한가운데에서 ‘어라, 이 쪽으로 오려던 게 아닌데’ 하며 머리를 긁적이곤 했다;

 

 

시부야 타워레코드 앞

 

시부야에서 하라주쿠까지 걸어서 가는 가장 쉬운 방법은 일단 타워레코드를 찾는 것이다. 타워레코드는 JR 시부야 역에서 하치코 출구로 나와 바로 보이는 스타벅스와 삼천리약품(三千里藥品) 사이 길로 가다 보면 나온다. (1000엔 도쿄 첫 번째 글에 첨부한 사진에 보이는 길이다.) 타워레코드가 있는 길에서 시부야 역과 반대 방향으로 쭉 가다 보면, 왼쪽에 NHK 방송국이 나오고 곧 이어 길이 갈라지면서 육교가 나온다. 거기서 왼쪽으로 가면 킴스가 하나미(벚꽃놀이)를 갔던 요요기 공원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바로 하라주쿠(原宿)다.

 

하라주쿠 역은 명성에 비해 의외로 작고 아담하게 생겼다. 지나는 지하철 노선 역시 많지 않다. 하라주쿠 역을 지나는 노선은 JR 야마노테선 하나뿐이고, 그 외에 치요다선(千代田線)의 메이지진구(明治神宮) 역이 하라주쿠 역과 붙어 있다. 굳이 따지자면 하라주쿠 역은 시부야에, 메이지진구 역은 오모테산도, 아오야마에 가깝다. 메이지진구란 한국말로 메이지 신궁, 그 말 많고 탈 많은 야스쿠니 신사가 있는 곳이다.

 


                   하라주쿠에서 꼭 걸어봐야 한다는 다케시타 거리(竹下通り)



일본 관련 여행책자의 하라주쿠 코스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크레뻬(크레이프)를 먹으면서 다케시타 거리 걷기’이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다케시타 거리에 크레뻬 가게가 많은 건 사실이다. 확실히 종류도 많고 맛도 괜찮다. 비단 여행객들뿐만 아니라 일본인들도, 이상적인 데이트 코스로 디즈니 랜드와 함께 다케시타 거리를 들곤 한다. 특히 중 고등학생이나 젊은 층에게 인기인 듯. 젊음과 청춘의 상징이랄까. 단, 다케시타 거리는 좁은 편인 데다 언제나 붐비기 때문에, 크레뻬를 먹으면서 걷다가 사람들과 부딪혀 떨어뜨리기 쉬우므로 조심하는 것이 좋다;



하라주쿠 GAP 가게 앞은 거의 만남의 장소화(化)되어 있어서,

엄연히 영업 중인 가게 앞이지만 이렇게 주저 앉아서 친구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많다.

보다시피 계단이 앉기도 좋게 생겼다.



하라주쿠 역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로 언제나 붐비지만, 시부야와는 달리 어딘가 모르게 여유라든가 정취 같은 것이 있다. 일단 시부야에는 피부를 과하게 선탠하고, 머리는 노랗게 물들이고, 허연 아이섀도와 짙은 마스카라를 쌔우고서 떼로 몰려 다니는 언니들이 많다. 일본 드라마에서 불량 학생으로 나와 ‘우르쎄에요, 바까! (시끄러, 멍청아!)’ 같은 말을 자주 내뱉는 무서운 언니들 말이다. 하지만 하라주쿠에서는 그런 언니들을 잘 볼 수 없다. 시부야는 음식점이나 가라오케, 이자까야 등이 많지만, 하라주쿠에는 옷이나 액세서리 가게, 작은 갤러리 등이 많기 때문에, 무서운 언니들은 주로 시부야에서 노는 듯.

 


 

또 시부야에는 대형 쇼핑몰이 많은 반면에 하라주쿠에는 작고 개성 있는 옷 가게들이 많다. 골목골목 돌아다니다 보면 흔해빠진 기성복이 아닌 수제 옷 가게라든가 다른 데선 쉽게 볼 수 없는 독특한 옷을 파는 가게들이 많다. 가격으로만 따지면 다이칸야마 > 하라주쿠 > 시모키타자와 순인데, 개인적으로 시모키타자와보다 하라주쿠가 옷은 더 예쁜 것 같았다.

 

아, 그리고 하라주쿠에서 쇼핑을 하려면 일찍 가는 것이 좋다. 저녁 8시만 되면 가게들이 다 문을 닫아버리기 때문이다. 킴스도 처음 하라주쿠에 갔을 때 7시 반쯤 도착했었는데, 얼마 안 돼 다들 문을 닫기 시작해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젊은이의 거리라는 하라주쿠가 어째서 8시만 되면 다 문을 닫고 캄캄해지는 것인지 정말 불가사의했다. 그래서 일본인 친구에게 물어봤더니 일본 사람들은 친구랑 놀다가 8~9시쯤 집에 돌아가는 것이 보통이고, 늦게까지 놀 거면 아예 밤을 샌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한국인 친구와 함께 “8~9시면 이제 시작하는 시간이잖아!”라며 흥분했던 기억이.(;) 확실히 한국이 음주문화가 지나치게 발달해 있어서 그런 걸까? 그런 부분은 굉장히 의외였다.

 

 

굳이 쇼핑을 하지 않더라도 그냥 골목골목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하라주쿠의 골목들은 시부야의 골목과 달리 번잡스럽지 않고 오히려 조용한 느낌까지 준다. 골목 깊숙이 들어갈수록 더 그런데(당연한 얘기지만), 그런 곳에 정말 독특한 가게나 분위기 좋고 커피 맛도 일품인 카페들이 많으니 하라주쿠를 여행할 때는 다리가 좀 아프더라도 많이 걸을 것을 권한다.


 

시부야부터 걸어가라 해놓고 또 걸으라는 거냐고? 다리가 아파서 도저히 더 이상은 못 걷겠다면, 밖이 잘 보이는 카페나 길 가 벤치에 앉아서 그냥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도 좋다. 어쩌면 사람 구경이야말로 하라주쿠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방법일 지도. 일단 하라주쿠에서는 독특한 패션의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결코 심심하지 않을 것이다, 일본 하면 떠오르는 코스프레 복장으로 다니는 사람들 역시 하라주쿠에서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또 언제나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니 너무 큰 기대는 금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