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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新)과 구(舊)가 공존하는 축제의 나라 본문

WRITING/1000엔 도쿄

신(新)과 구(舊)가 공존하는 축제의 나라

pencilk 2006. 11. 2. 22:11


일본의 여름은 축제의 계절이다. 여기저기서 크고 작은 하나비(花火, 불꽃) 축제가 열리고, 지역마다 그 지역 특유의 축제들도 열린다. 도쿄의 가장 대표적인 하나비 축제로는 스미다가와 하나비 대회(隅田川花火大会)가 있는데(일본에서는 하나비 ‘축제’라고 하지 않고 하나비 ‘대회’라고 한다), 아사쿠사(浅草) 근처에 있는 스미다 강을 따라 2만여 발의 불꽃을 쏘아 올린다.


일본의 하나비는 그저 예쁜 불꽃을 한꺼번에 하늘에 쏘아 올리는 것이 아니라, 불꽃 하나하나가 작품이어서 쏘아 올릴 때마다 만든 업체, 주제 등을 설명하면서 진행된다. 특히 스미다가와 하나비 대회에서는 하나비 관련 업체 7개사와 전국 하나비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얻은 3개사가 경쟁을 벌이는 하나비 콩쿠르가 열리는 것으로 유명한데, 매년 TV에서 중계도 해준다. 작년에는 무려 99만 5500명의 사람들이 이 스미다가와 하나비 대회를 보러 갔다고 한다.




하나비가 열리는 날은 일본 전통의상인 기모노나 유카타를 입은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이제는 추석 같은 큰 명절에도 어린이들이나 한복을 입는 한국에 비해 일본 사람들은 전통의상을 자주 입는다. 특히 제대로 갖춰 입으면 입는 데만 1시간이 넘게 걸린다는 기모노와 달리, 쉽게 입을 수 있고 활동하기에도 불편하지 않은 유카타를 자주 입는다. 일본인들이 전통의상을 그저 ‘전통’으로만 남겨놓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자주 입는 데는 이러한 유카타의 존재가 큰 몫을 했을 지도 모르겠다 한복보다 좀 더 활동하기 편한 전통 옷이 있었다면, 한국 사람들도 자주 입었을까?


하지만 활동성의 문제는 아닌 듯 하다. 사실 유카타가 편하다고 해도 여성의 유카타는 치마 폭이 좁아서 한복보다 결코 활동성이 좋다고 할 수 없다. 대신 유카타는 몸에 달라붙는 편이라 몸매가 드러나기 때문에, 입었을 때 여성스러움과 함께 묘한 섹시함까지 풍길 수 있다. 요즘 옷들과 비교해도 결코 촌스럽거나 고리타분해 보인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도 많은 일본의 젊은 여성들이 유카타를 즐겨 입는 게 아닐까.


정확한 이유가 무엇이든, 일본 사람들이 자신의 전통의상을 지금까지도 예쁘다고 생각하고 즐겨 입는다는 것이 참 좋아 보였다. 동시에 한국도 한복을 현대에 맞게 개량해서 사람들이 한복을 자주 입게 하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개량한복이 없는 것도 아닌데. 가격이 비싼가? 아무튼 개량한복은 아름답기는 하지만, 젊은이들이 좋아할 만큼 현대적이거나 많은 사람들이 즐겨 입을 만큼 대중적이지는 않은 것만은 확실하다. 일본은 축제문화가 발달해 있어 여름 내내 축제 분위기인 것만도 굉장히 부러웠는데, 그 축제를 찾는 많은 사람들이 전통의상을 입고 진풍경을 이루는 모습은 정말 탐날 만큼 매력적이었다.





하나비 때는 어른들보다 오히려 젊은 사람들이 유카타를 더 많이 입는다. 그러다 보니 신세대 젊은이들 식의 독특한 유카타 패션을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유카타라는 전통의상을 입고도 그와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선탠한 피부에 진한 화장을 하고, 샤기컷의 갈색머리를 휘날리며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며 걸어간다. 나무로 만들어 걸을 때 소리가 나는 게다를 신는 것이 원칙이지만, 요즘은 게다 대신 편한 조리를 신는 경우가 많다.


유카타 허리 부분의 띠 같은 것을 오비라고 부르는데, 이 오비를 메는 방법이 굉장히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에는 아예 리본을 미리 만들어서 따로 팔기 때문에 그냥 달기만 해도 된다. 유카타의 색과 오비의 색의 대비와 조화가 유카타 패션의 포인트라 할 수 있다. 음, 확실히 유카타는 치마 폭이 좁아서 몸매가 확 드러난다. 맨 오른쪽 여성분의 질펀한 엉덩이(;)



일본의 여름은 하나비 외에도 각 지역 특유의 갖가지 축제들이 넘쳐난다. 음악을 틀어놓고 거의3~4시간에 걸쳐 정해진 율동을 무한 반복하는데, 중간에 조금씩 자율적으로 변형을 주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같은 동작을 어쩜 그렇게 질리지도 않고 몇 시간이고 추는지 정말 신기했다. 한국 대학생들이 ‘바위처럼’을 추는 것과 비슷하지만 바위처럼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오랜 시간 동안 춘다. 그리고 음악 역시 ‘바위처럼’보다 훨씬 전통적이고 친근(?)하며, 율동도 엄청나게 단순하다. 주로 ‘얏사이 못사이 써레써레~’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하는데, 얏사이 못사이(やっさ・もっさ)는 여러 사람이 모인 모양을 뜻한다고 한다. 



여름방학 때 일본 전국을 여행하면서 고베, 나라 등에서 축제를 구경한 적이 있는데, 음악만 트는 것이 아니라 주로 사회자가 마이크를 들고 “아~ 모두들 정말 열심히 해주시고 계시군요! 자, 좀 더 힘을 냅시다! 얏사이 못사이~ 얏사이 못사이~ 아~ 대단합니다!”와 같은 중계(?)를 하면서 춤을 추는 사람들의 흥을 돋군다. 


드라마 <키사라즈 캣츠아이>를 본 사람이라면 키사라즈 지역의 강렬한 ‘얏사이 못사이’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키사라즈 캣츠아이>의 광팬인 킴스는 그 얏사이 못사이를 보기 위해 축제 기간에 맞춰 키사라즈에 갔다. 키사라즈 지역의 얏사이 못사이는 참가 신청을 한 팀들만이 참가할 수 있었다. (다른 지역에서도 다들 그렇게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각 팀 별로 이름도 있고, 팀의 컨셉에 맞게 의상과 소품을 준비한다. 이 의상과 소품은 100% 자비로 준비할 뿐만 아니라, 얏사이 못사이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참가비까지 내야 한다. 각 팀들은 기본적인 얏사이 못사이 동작 외에 각 팀들만의 자유 동작을 준비하는데, 이 동작과 의상, 소품을 종합 심사해 1등 팀을 선정한다. 1등 팀은 트로피와 상금을 받는데 상금액수는 그리 많지 않다. 게다가 한팀 당 적어도 10~20명은 되는 것을 생각했을 때, 자비를 들여가며 의상과 소품을 마련하고 새로운 율동을 준비하는 것은 이윤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야말로 축제를 즐기기 위해서임을 알 수 있다. 다양한 컨셉의 의상과 소품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어른, 아이,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그야말로 모든 사람들이 다 거리로 나와서 율동에 참가한다. 특히 젊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점이 굉장히 놀라웠다. ‘얏사이 못사이’ 율동은 굉장히 단순하고 정겹고, 또 신난다. 그리고 촌스럽다. 젊은 세대 사람들이 ‘그런 촌스러운 구닥다리 율동 같은 거 안 해~’라고 생각하지 않고 의상과 소품까지 미리 준비해 와서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은 굉장히 신선했다. 선탠한 피부에 진한 화장, 염색한 머리. 겉모습만 보면 당장이라도 시부야에 가서 껌을 씹어야 할 것 같은데, 그런 외모와는 너무나 안 어울리는 얏사이 못사이를 신나게 추고 있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일본 젊은이들의 의외의 순수성이랄까, 그런 것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사실 일본 젊은이들 하면, 어른들에게 쉽게 반말을 하고(한국과 일본의 존경어는 조금 의미가 다르긴 하지만), 패션과 유행에 민감하고, 스타일 구기는 일은 절대로 안 할 것 같은 그런 이미지가 있었는데, 소박한 전통 축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면도 있구나 싶었다.




키사라즈 얏사이 못사이 축제의 명물은 바로 이 키시단(気志団)의 코스프레. 키시단은 키사라즈 출신의 락 그룹인데, 키사라즈가 워낙 작은 동네이다 보니 키시단은 키사라즈의 영웅이나 마찬가지다. <키사라즈 캣츠아이>에서도 키사라즈 출신의 가수 역으로 출연해, 성공하고 나서도 고향을 잊지 않고 챙기는 의리 있는 모습을 연기했었다.




요것이 진짜 키시단의 모습. 결코 쉽게 만들 수 있는 헤어 스타일이 아닌데도, 키시단 머리를 한 사람이 꽤 많았다. 게다가 다들 가발이 아니라 진짜 머리였다는; 이 날, 얏사이 못사이가 한창 진행되고 있던 도중에 키시단이 깜짝 등장을 했다. 주민들 틈에 끼어서 같이 얏사이 못사이를 하다가 아주 잠깐 사회자의 마이크에 대고 인사 한 마디만 하고 갔다. 정말 연예인스럽지 않은 등장이었다. 동시에 왜 키사라즈 주민들이 키시단을 그렇게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았다.


하나비와 유카타, 그리고 얏사이 못사이.

일본의 여름은 젊은 세대와 어른 세대, 새로움과 예스러움이 한데 어우러지는 축제의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