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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KING/영화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pencilk 2013. 6. 3. 06:02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2009)

The Reader 
8.6
감독
스티븐 달드리
출연
케이트 윈슬렛, 데이빗 크로스, 랄프 파인즈, 레나 올린, 브루노 간츠
정보
로맨스/멜로, 드라마 | 미국, 독일 | 123 분 | 2009-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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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이 있고 그것을 영화화한 영화가 있을 때는 가능하면 책부터 읽는 편이다. 영화부터 보고 나면 책을 읽을 때 영화 속 이미지들이 개입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책을 먼저 읽고, 책에서 내가 머릿속으로 떠올린 이미지와 영화가 풀어낸 영상들을 비교하면서 책은 책대로, 영화는 영화대로 각각의 강점에 맞게 감상하려 노력하는 편이다. 어차피 책에 표현된 모든 것들이 영화로 표현될 수 있을 리 만무하고, 또 글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영상으로는 더 풍성하게 표현될 수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더 리더>는 애초에 영화부터 보기로 마음 먹은 작품이다. 영화가 개봉한 지 3년이 지난 지금에야 영화를 봤는데도, 그 전에 책을 먼저 읽을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영화를 아직 보지 않았어도, 이미 나는 영화 속 스틸컷으로 새로 만들어진 Movie Tie-in 표지에서 케이트 윈슬렛의 표정을 보아버렸기 때문이다.



김연수와 김중혁이 씨네21에 연재한 칼럼을 모은 책 『대책없이 해피엔딩』 중 <더 리더>에 관한 글에서 김연수는 오롯이 케이트 윈슬렛의 얼굴만을 떠올리며 글을 쓰고 싶다는 말로 칼럼을 시작한다. 책을 여러 번 읽은 그는 Movie Tie-in으로 재단장한 책 표지 속 한 여인의 시선에 사로잡혔고, 이미 내용을 다 알고 있었기에 훌륭한 관객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는 내내 책에서는 알 수 없었던 한나의 마음들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표지 속 케이트 윈슬렛의 시선을 보아버린 이상 책을 읽는 내내 내게 한나는 그저 케이트 윈슬렛일 수밖에 없을 거라는 건 너무도 자명한 일이었다. 그만큼 그녀의 시선은 강렬했다. 단 한 장의 사진만으로도.




사실 이 영화를 처음 본 것은 아니다. 두 사람이 여행을 가는 부분까지 보다가 무슨 이유에선지 멈췄는데 그 이후 한동안 이 영화를 까맣게 잊고 살았다. 그래서 영화의 앞부분만 봤던 나는 그냥 십대 소년과 삼십대 여성의 러브 스토리가 이 영화의 내용인 줄 알았다. 하지만 <더 리더>는 그저 그런 연상 연하 커플의 사랑 이야기를 하는 영화가 아니었다. 사회와 역사, 그리고 한 사람의 개인, 법과 수치심, 또는 기억, 이러한 것들이 또 다른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인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 영화가 그리고 있는 메시지는 복잡하지만, 영화가 끝났을 때 내 가슴을 일렁이게 한 것은 '한 여자의 인생'이었다.



한나 슈미츠. 그녀의 삶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녀의 인생, 그녀의 선택, 그녀가 가진 비밀, 수치심, 그리고 그녀가 기억하는 마이클, 그와 보낸 시간들. 

그러한 것들이 그녀의 삶을, 그녀의 일생을 뒤흔드는 순간들을 지켜보면서, 그녀의 삶은 어떤 것이었을까, 생각했다.



마이클이 그녀를 외면하는 순간들마다 가슴이 쓰리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면회를 갔다가 그녀를 만나지 않고 발걸음을 돌렸을 때도, 최종판결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면서도 끝내 그녀 앞에 나타나지 못했을 때도, 마이클을 탓할 수는 없었다. 재판장에서 한나가 했던 한 마디가 내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재판장님이라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내가 마이클이었어도 마이클이 했던 것 이상은 할 수 없었을 거다. 한나가 문맹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무기징역을 산 것은, 마이클이 한나와의 관계를 누군가에게 설명할 수 없어 그녀를 재판에서 구하지 못한 것은, 모두 수치심 때문이다. 그래서 마이클이 아내와 이혼한 후 감옥에 있는 한나에게 책을 읽어 녹음한 테이프를 보내기 시작했을 때는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나는 그렇게나마 안도하고 있는 내 자신에 대해 수치심을 느꼈다. 한나를 비롯한 여섯 명의 아우슈비츠 수용소 감시원들을 벌함으로써 나치를 저지른 전 세대의 죄와 내가 직접 저지르지 않은 일에 대한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하는 독일인의 마음과 다를 것이 없었다. 내가 마이클이었어도 한나를 위해 증언하기 힘들었을 거라 생각하면서도, 책을 녹음한 테이프를 보내는 그의 행동으로 인해 마음 속에 앙금처럼 남아 있던 죄책감이 조금이나마 덜어지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석방을 며칠 앞둔 한나와 마침내 마주 앉게 된 마이클을 보면서, 어딘지 모르게 거리감이 느껴지는 그의 태도에 한나의 표정이 변해가는 것을 느끼면서도, 그를 탓할 수가 없었다. 그 누구의 탓이란 말인가.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머릿속을 맴도는 질문에 대한 답은 수치심으로 목이 메이게 했다.


엔딩 크레딧과 함께 흘러나오던 영화 OST 곡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서 찾아보았다. 곡 제목마저 참 영화의 엔딩 다웠다.

Who Was Sh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