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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 본문
집 구하느라고 구로, 마포, 공덕, 신촌, 홍대, 당산, 신길까지, 여기저기 돌아다니느라 피곤에 쩔고, 회사 일도 신입 입사 일정이 늦춰지면서 빠진 사람 몫의 일을 남은 사람들이 하느라 만신창이로 지낸지 어언 한달. 드디어 어제 신입은 첫출근을 하였고, 다음주 화요일이면 이사를 간다. 드디어. 드디어!!
집 계약은 벌써 했지만 앞에 살던 사람이 짐을 덜 빼서 아직 청소도 못해놓고 방 크기도 제대로 재보지도 못했다. 그래서 이제 점점 이사갈 집이 어땠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해지려 한다. 그냥, 지금 살고 있는 집보다 훨씬! 넓었고 아늑했으며, 위치가 홍대 정문 앞이었다.(앗싸!)
한동안 인터넷으로 가구 보면서 설레기도 하고 예쁘면 엄청나게 비싼 현실 앞에서 절망도 하곤 했었는데, 이리저리 머릿속에서 배치해보던 가구의 조합 중 최선의 결론이었던 식탁과 의자 2개를 드디어 질렀다. 지르고 나니, 갑자기 진짜 이사 간다는 게 실감 난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살아온 27년간 책상 없는 방에서 사는 건 거의 처음이 되는구나. 이제 노트북으로 작업할 수 있고 그저 아~주 가끔 무언가를 끄적거릴 수 있는 공간 정도로 족하기에, 혼자 살지만 조금 넓은 식탁을 샀다. 말이 식탁이지 윤정언니의 표현대로 심하게 심플한 디자인이라(완전 내 스타일!) 식탁이 아니라 그냥 사무용 책상 같기도 한 녀석이다. 이삿짐 센터 예약도 끝났고, 이제 정말 이사가 코 앞이다. 갑자기 정말 설레기 시작한다.
돈이든 시간이든, 나를 위해, 오로지 나만을 위해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은 의외로 길지 않다는 것을 요즘 들어 부쩍 깨닫고 있다. 내가 결혼을 할 확률은 굉장히 낮아보이고 현재로선 과연 할까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또 언젠가 하긴 하겠지 라고 생각하고 있는 한, 이 자유는 결혼하기 전까지로 한정되어 있다. 물론 결혼한 후에 두 사람이 함께 만들어갈 삶에 대해 회의적인 것은 아니다. 실제로 우리 오빠랑 새언니 보면 정말 재미있게 잘 살고 있고. 하지만 하물며 연애만 해도 내 시간과 돈과 감정까지 상당 부분 상대에게 쏠리는데, 이렇게 혼자만의 공간에서 내 취향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그렇게 살 수 있는 건 역시 싱글일 때뿐 아닐까.
그래서 소중히 하고 싶다. 즐기고 싶다. 학생일 때는 경제력이 없어서, 직장인이 되면 시간이 없어서 못 하는 것이 많다고 하지만, 적어도 '경제력'에 비해 '시간'은 마음 먹기에 따라 쪼개고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니까. 그러니까 시간이 없어서, 라는 핑계로 이 소중한 시간을 헛되게 보내고 싶진 않다. 아울러 이 시간이 내 20대의 마무리를 장식하게 될 테니까.
뭐, 그렇다고 매일매일 알찬 계획을 세워서 대단한 일을 하며 살 생각은 없다. 적당히 쉬고, 잘 놀고, 그리고 무료하지 않을 만큼 여유롭게 살고 싶다. 그 나이대에는 그 나이대에 맞는 삶이 있는 거니까. 굳이 나이에 연연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지금 내가 발랄하고 시끄럽고 두려운게 없고, 또 많이 휘청거리기도 하는 20대 초반의 삶을 살 생각은 없으니까.
그냥, 내 삶을 소중히 하고 싶은 거다.
그리고 내 삶에, 만족하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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