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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 아주 오래된 농담

pencilk 2003. 12. 12. 17:23

1. 이 소설 속에 그려져 있는 한국 가족의 아킬레스건은 무엇인가


가족은 우리에게 힘이 되는가, 아니면 굴레가 되는가. 이 문장이 책을 읽는 내내 내 머릿속을 떠돌던 질문이었다. 특히 서구 사회에 비해 한국 사회에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특징이 바로 그 가족에 대한 지나칠 정도의ㅡ그래서 벗어나고 싶어지게끔 하는ㅡ 책임과 그러한 가족이 주는 정신적 안정의 모순이 아닐까.


한국 사회는 다른 그 어떤 사회보다도 가족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사회다. 가족에 의해 개인의 삶이 엄청난 영향을 받고 심지어 인생이 180도 달라지기도 한다. 늦둥이 동생 영묘가 태어났을 때, 당시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장남인 영준과 차남인 영빈의 반응은 엇갈린다. 영빈은 그저 소년으로써 한 생명의 탄생에 감탄하고 아름다움을 느꼈지만, 영준은 ‘장남’으로써 동생의 탄생을 바라보았다. 그는 영묘가 태어나서 짐이 하나 더 늘어났다며 자신의 여동생을 향해 ‘재수 없는 년’이라고 내뱉는다. 그 누구보다도 가족의 이름으로 얽매이는 것을 혐오했던 그는 어머니의 여러 가지 바램들을 외면한 채 미국으로 떠나고, 그러한 모습은 그가 어느 정도 장남 역할을 회피하고자 한다는 인상마저 준다.
자신의 인생이라기보다는 어머니가 원하는 삶을 살아야 했던 영빈은 초등학교 동창인 현금과의 불륜을 통해서 의사라는 직업과 답답한 결혼 생활, 궁극적으로는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일탈을 즐긴다. 그는 집에서는 아들 노릇, 아빠 노릇, 남편 노릇 등의 일인다역을 해야 하는 반면 현금의 앞에서는 한 남자 노릇만 하면 된다는 것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가족의 굴레는 영빈뿐만 아니라 다른 인물들에게도 잔인하게 드리워진다. 영묘는 자신의 시집 식구들이 무언가 이상하고 자신의 가족들과 다르다고 느낀다. 그녀는 시집 식구들에게 끝까지 ‘며느리’라는 이름의 남이다. 그리고 자신의 가족들에게는 ‘출가외인’이지만 늘 신경 쓰이고 걱정되는, 안타깝고도 불편한 존재가 되어버린다. 영묘의 남편인 경호가 암으로 죽어갈 때, 송회장 가족은 경호에게 병명을 알리지 않는다. 그의 여린 마음을 배려한 것이 아니라 유산분배에 있어서 경호에게 결정권을 배제하기 위해서였다. 경호의 장례식 때 각계의 유명인사들을 불러들여 그들을 비디오에 담음으로서 자기 과시를 하는 등 온갖 참을 수 없는 송회장 가족들의 만행에도 영묘는 그 집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자신의 두 아들을 잃을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기도 했고, 자신이 시집의 엄청난 재산을 포기하면 바보가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