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더글러스는 가치나 세계관 등의 추상적 개념보다는 일상 생활에서 관찰 가능한 문화적 산물들, 즉 상품이나 깨끗함과 더러움, 사람들이 자신들의 신체를 다루는 방식 등 이상 생활의 실재를 주로 연구하였다. 뒤르켕에게 종교의 본질을 포함하고 있는 오스트레일리아의 토템이 전체 사회체계를 담고 있는 하나의 사물이었다면, 더글러스에게는 단순하고 명백하며 일상적인 것이 이러한 사물이었다.
메리 더글러스는 뒤르켕의 영향을 많이 받은 학자이다. 뒤르켕은 고전사회과학자들 중에서 그녀의 연구에 명확한 흔적을 남긴 유일한 학자라고 할 수 있다. 더글러스는 인간사고의 사회적 기초가 있다는 뒤르켕의 주장을 받아들였으며 이를 근대사회의 신념체계에 적용하고자 했다. 또한 이항 대립적 분석을 통해 분류체계의 속성을 밝히는데 초점을 둔 뒤르켕의 ‘집합적 속성’ 개념은 더글러스 연구의 이론적 틀을 제공하였다. 이는 그녀의 조직강도에 따른 변화개념, 집단의 기능화, 그룹(group)과 그리드(grid)의 개념 등의 바탕이 되었다. 하지만 분류적 속성보다는 사회의 관계하의 문화속성 자체에 관심을 두었고, 초기사회와 근대사회를 구분하지 않고 동일하게 봤다는 점에서는 뒤르켕과 차이가 있다.
이처럼 더글라스의 문화인류학에는 뒤르켕의 개념을 그대로 받아들인 측면이 있는 동시에 뒤르켕과 차이가 나는 부분도 있다. 지금부터 더글러스가 자신의 사회학에서 뒤르켕의 개념을 받아들인 부분을 알아보고 그녀가 뒤르켕의 생각과 차이를 보이는 부분을 비교하여, 뒤르켕과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중심으로 더글러스의 문화인류학을 분석해보겠다.
메리 더글러스가 뒤르켕의 개념을 받아들인 흔적은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먼저 더글러스는 뒤르켕의 이항 대립적 방법을 받아들였다. 그녀는 “모든 경험은 구조화된 형태로 이루어진다”고 여기고, 현실을 상징적으로 조직화한다. 성스러운 것 vs 세속적인 것, 초기사회 vs 근대사회, 무질서 vs 질서 등으로 짝을 지어서, 상징들의 구분체계를 이항대립적인 분류체계로 형성하고자 했다.
더글러스는 ‘오염‘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분석함으로써 사회질서 체계를 이해하고자 했다. 그녀는 우리가 ‘더럽다’라고 느끼는 것은 사물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것들의 ‘위치’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 때의 더러움은 상대적인 것이다. 무엇이 깨끗하고 더러운가는 분류체계와 그 체계 내 사물의 위치에 의해 결정된다. 이는 단순히 장소의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윤리적, 도덕적 시각이 담겨 있는 것으로서 옳고 그름의 문제와 연결된다 이면에는 질서에 대한 윤리적 평가가 전제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더러움은 상징의 영역으로서 ‘순수’의 상징체계와 연결될 수 있다. 즉, 더러움과 순수함의 개념은 사회의 분류체계에 따라 나뉘게 된다.
분류체계는 구체적인 상징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의례나 담론 속에서 재강화되는 형식이나 문화적 구조를 말한다. 분류체계에 대한 그녀의 관심은 집단생활의 질서에 관한 의문에서 비롯된다. 더글러스는 전체 집단이 기능하는 데 중요한 문화적 구분의 종류와 이런 구분을 알 수 있게 하는 매개물을 연구하고자 한다. 이는 사회적 현상을 독자적 사실로 보는 뒤르켕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메리 더글러스는 사회적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사회, 사회적 질서, 계급구조, 국가장치, 생산양식이 변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사회적 관계를 어떻게 만들든지 또는 사회적 권리, 권력, 그리고 나머지 가치들을 어떻게 재분배하든지 간에 여전히 어느 정도의 사회적 질서가 존재하며 의례에 의해 재강화되고 재생산된다고 주장한다.
더러움과 범죄는 같은 현상이며 모두 제자리에서 벗어난 것을 뜻한다. 더글러스는 이러한 제자리를 벗어난 ‘일탈’된 것에 대한 두려움은 원래의 위치를 만들어낸 도덕적 구조에 대한 위협을 수반한다고 주장한다. 일탈과 더러움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사회적 규칙과 경계를 새롭게 하고 재정의하기 위한 기본적인 사회적 메커니즘의 하나이다. 즉 사회적 규칙을 위반하는 것에 대해 우리가 잘못된 것, 더러운 것이라고 느끼는 것을 통해 사회가 위협 받은 경계를 재규정하는 것이다. 일탈의 양은 상대적으로 일정하게 유지되지만 도덕질서에 있어서 ‘경계의 위기’라 불리는 상황이 일어날 때는 극적으로 증가한다. 집단적인 경계나 정체성이 위협 받는 상황이 발생할 때 사회는 희생양이나 마녀사냥과 같이 의례적인 박해를 하는 방식으로 이에 반응한다. 이처럼 어느 순간 갑자기 제자리에서 벗어난 사물들에 반응하게 되는 경우는 사물들이 제자리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적 위기이기 때문이다. 뒤르켕은 <분업론>에서 범죄 행동이 우리의 일반 상식에 충격을 주기 때문에 그러한 행동을 범죄적 행동이라고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더글러스는 이러한 뒤르켕의 주장을 받아들여 ‘어떤 사물이 더럽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사물이 위치를 이탈했기 때문에 더러운 것’이라고 자신의 식으로 표현했다.
더글러스는 뒤르켕이 말한 사회의 제의적 기능 개념을 받아들였다. 더글러스는 사회의 이미지를 지위범주로 잘 정의된 방과 공포와 위험으로 가득 찬 파도적 지대인 복도들로 이루어져 있는 집으로 비유한 방주네프의 개념을 확장시킨다. 그녀는 경계를 따라 잘 구조화된 사회체계 속에도 어떤 힘이 상주한다고 주장하며 행동이 기대된 역학을 능가할 때 사람들은 그것을 천재성과 같이 비범한 힘과 능력으로 생각한다고 말한다. 또한 그녀는 “오염이란 구조, 우주, 사회의 경계가 명확하게 규정되는 곳이 아니고서는 잘 발생하지 않는 위험의 한 형태”라고 주장하는데, 이런 주장은 <종교생활의 원초적 형태>의 ‘강력한 공동의 질서가 존재하는 곳에 권력과 잠재력이라는 개념이 존재한다’는 뒤르켕적 사고에서 나온 것이다.
메리 더글러스의 연구는 더러움과 깨끗함의 기원에서 경계와 경계의 의례적인 재강화에 대한 연구로 이어진다. 그녀의 연구에서 ‘의례’는 하부사회와 상부문화를 매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녀는 의례가 의사소통의 유용한 수단이자 문화를 전달하는 역할을 가진 ‘언어’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의례의 개념을 발전시키기 위해 번스타인의 정교화된 언어코드와 제한된 언어코드에 관심을 기울인다. 제한된 코드 하에서 사람들이 말한 것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그 집단의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가정들을 알아야 한다. 그 가정들은 사람들의 삶에 스며들어 그들이 구성한 집단을 재확인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런 과정들은 집단감정을 재확인하려는 개인적 의도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이 제한된 코드로 말한 것을 다른 사람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공유된 가정을 사용해야만 하기 때문에, 제한된 코드가 사용되는 그 상황 자체가 집단감정을 자동적으로 재확인하게 하는 것이다. 이처럼 의례를 통해 집단감정을 확인하고 사회 속의 자신을 느낀다는 부분은 뒤르켕의 <종교생활의 원초적 형태>와 상통한다.
더글러스의 연구는 음식물과 식사, 그리고 그 외의 코드들에 대한 관심과 논의에서 근대사회에서의 상품의 역할을 보여주는 문화적 분류체계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라는 일반적 논의로 옮겨간다. 경제적 상품들은 보다 큰 문화체계의 일부이며, 문화의 다른 측면들처럼 의미를 전달하고 특정한 사회적 기능을 지닌다. 상품들은 사회실재를 구성하고 구분하는 사회적인 표시물로 사용된다. 즉 우리의 사회적 상황을 보다 잘 표현하고 자신의 사회적 자아를 위치시키기 위해 상품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품의 문화적 역할에 대한 분석은 프로테스탄트 윤리를 발생시킨 사회적 관계들에 대한 연구의 중요성에 대한 주장으로 연결된다. 그녀는 프로테스탄티즘의 발흥은 적어도 이를 하나의 우주론으로 보았을 때, 완전한 형태의 전환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변화된 집단생활을 반영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의 그녀의 주장은 보다 근본적으로는 뒤르켕주의적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공동집단보다 계급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는 마르크스와 유사하다.
더글러스는 인간존재의 집합적 특성을 강조하며, 도덕질서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의례가 도덕질서를 극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에 주의를 기울였다. 이런 과정의 일반적인 특성을 밝혀내기 위해 그녀는 원시적인 문화를 연구하는 뒤르켕학파의 방법론을 따랐다. 그녀는 뒤르켕 연구의 한 축이라고 할 수 있는 분류체계의 특성연구를 한층 진척시켰다.
이와 같이 더글러스는 뒤르켕의 개념을 연구의 기본적인 개념으로 차용했으나 몇 가지 점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첫째, 뒤르켕은 원시적인 것이 근대적인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했으며 사회적으로 결정되지 않은 지식, 즉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진실을 믿었다. 반면, 더글러스의 경우 원시사회와 근대사회가 동일하다고 보았으며, 이를 위생학에 빗대어 설명한다. 위생학은 ‘청결’의 개념에서 유래된 것이 아니라, 원시사회의 주술적인 의미와 유사하다고 보며, 이를 하나의 제의적 행위로 간주한다. 즉, 사회적 질서의 합법성을 드러내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뒤르켕이 말하는 원시사회가 유사성에 근거하는 기계적 유대에 의해 결속되고 근대사회가 상호의존성에 근거하는 유기체적 유대에 의해 결속된다는 차이점이 중요하긴 하지만, 이것이 원시사회와 근대사회를 구분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사실상 기계적이거나 유기체적인 유대를 발생시키는 조건들은 원시사회와 근대사회에서 모두 존재하기 때문에 기계적, 유기체적 체계는 동시에 일어날 수 있다. 근대사회가 세속적인 것은 근대사회의 사회조직이 ‘원시적’에 대립하여 ‘근대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어떤 특정 형식의 사회관계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뒤르켕이 이항적 분류체계 자체에 보다 관심을 두고 사회구조와 문화를 분리하는 도구로 보았다면, 더글러스는 문화 그 자체의 내적 속성에 관심을 두고 있다. 특히 뒤르켕의 종교 연구에서 문화가 단지 사회구조의 기능적 부속물로 평가 절하되는 이원론적 성향을 나타내는데, 문화 인류학자인 더글러스는 이러한 뒤르켕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녀는 분류적 속성보다는 사회의 관계 하의 문화속성 자체에 관심을 두었다. 또한 문화와 다른 요소와의 궁극적인 인과관계 혹은 다른 요소에 의해 문화가 어떻게 결정되는가 보다는 문화 그 자체, 문화의 내적 양식에 가장 큰 관심을 가졌다. 즉, 문화는 일상적인 사회적 관계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셋째로 두 사람은 1960년 후반에 미국에서 나타난 환경오염에 대한 분석시각에도 차이를 보인다. 뒤르켕은 하나의 국가수준으로 분석하였으나 더글러스는 낮은 수준의 단위에서 분석이 행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뒤르켕은 분석단위를 국가적 차원에서 바라보아 환경오염을 ‘국가정체성의 위기’에서 발생한 사항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더글러스는 당시 서구 다른 국가에서도 환경오염이 발생했다는 점을 들며, 낮은 수준의 단계 해석, 즉, 사회 관계 맥락 하에서 본 기능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녀는 특정의 기술적이고 환경적인 위험들이 선택되는 데 영향을 주는 사회적 상황을 규정하는 데에 관심을 가졌다. 또한 환경에 대한 위험과 관련 있는 오염신앙의 기원은 전체 사회의 우주론적 관심보다는 가장 떠들썩하게 이런 위험을 드러내는 집단들에서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더글러스의 연구의 중심은 사회적인 생산과 재생산에 있어서의 의례와 상징의 역할이라는 뒤르켕학파의 기본적인 믿음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종교적이라고는 여겨지지 않는 일상적 의례가 그녀의 연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그녀는 이항대립적 방법, 집합적 속성, 사회의 제의적 기능 등 뒤르켕의 개념을 많이 받아들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분류적 속성보다는 사회의 관계 속의 문화속성 자체에 관심을 두었고, 원시사회와 근대사회를 구분하지 않고 동일하게 봤다는 점에서 뒤르켕과 차이가 있다. 의례, 상징, 신화의 변화를 체계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더글러스는 집단-격자라는 분류 도식을 고안해냈다. 그녀는 의례를 구성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확장시켰을 뿐만 아니라 의례와 언어학적 코드의 연결을 통해 모든 종류의 상징체계를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제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