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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cilk
좋은 여행이우일 저 시공사 | 2009년 06월내가 원했던 여행은 낯선 곳에서 일상처럼 음악을 듣고, 커피 한잔을 마시고, 또 책을 읽는 그런 사소한 것이었다. 혼자 하는 여행 중에 듣는 음악들은, 그것이 이전에 수백 번이고 들었던 익숙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 속에 스며든 여행의 기억들로 인해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 그래서 내게는 정동진의 일출을, 영국의 한적한 공원을, 파리 퐁피두센터의 달콤한 브라우니를 떠오르게 하는 음악들이 있다. 이런 음악들은 온전히 나만이 느낄 수 있는 나만의 음악이 된다. 『좋은 여행』은 이러한 여행의 작은 기쁨들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홋카이도를 혼자 여행하는 내내 직접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을 친구에게 보내면서 나는 결코 외롭지 않았다. 수천 장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디지털 ..
내 심장을 쏴라정유정 저 은행나무 | 2009년 04월 잊고 있었던 '나'라는 녀석과의 대면 사람이 오로지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순간은 과연, 생의 몇 퍼센트나 될까? 말을 바꿔 보자. 한 사람이 자신의 생에서 오롯이 '그 자신'일 수 있는 순간은 몇 시간, 몇 분 몇 초나 될까? 더 나아가, 그 무엇에도 영향 받지 않은 온전한 나 자신으로 있을 수 있는 '순간'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만끽할 수 있는 이는 이 세상에 몇이나 있을까. 『농담』에서 밀란 쿤데라는 실재(實在)하는 '나'보다도 더 현실성 있고 영향력 있는 '이미지'에 대해 역설한 바 있다. 그 '이미지'가 비록 '나'를 닮지 않았다 해도 사람들이 나를 그 이미지로 바라보는 한 나의 이미지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쿤데라..
엄마의 집전경린 저 열림원 | 2007년 12월 즐거운 나의 집공지영 저 푸른숲 | 2007년 11월 9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소설 속 여성들은 가부장적 사회를, 남성을, 그리고 집을 떠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집에서 남편을 기다리거나 아이만을 바라보며 살지 않고, '내 생애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을 위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살아가기 시작했다. 공지영과 전경린. 두 사람은 이러한 90년대 소설의 선두에 서있었던 작가들이다. 그 접근방식에 있어 은희경이 냉소를, 김형경이 정신분석학을 택했다면, 공지영은 신파를, 전경린은 성(性)을 택했다. 이렇게 다소 다른 방식으로 집을 나섰던 그녀들이 집으로 돌아왔다. 바로 '즐거운 나의 집'과 '엄마의 집'이다. 그녀들을 집으로 돌아오게 한 것은 바로 그녀들의 ..
SNOWCAT in PARIS권윤주 저 안그라픽스 | 2004년 09월 내게 있어 로망의 도시라 함은 언제나 ‘파리’다. 언젠가부터 늘 그랬고, 유럽 여행 중에 실제로 파리에서 며칠 지낸 후에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파리가 정말 아름답기만 하고 완벽한 도시여서가 아니다. 여름이면 에어컨을 켜는 대신 창문을 연 채 온갖 알 수 없는 미생물이 살고 있을 듯한 지하터널을 쌩쌩 달리는 지하철과 나이트 사이키 조명 같은 에펠탑 조명쇼, 한강에 비하면 동네 시냇물 수준인 세느 강.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리는 여전히 ‘파리’이기에, 나는 파리의 그런 면까지 사랑할 수밖에 없다. 스노캣은 캐릭터 자체가 내 로망을 거의 완벽하게 재연해낸 캐릭터다. 귀차니즘 중증이라는 공감 100%의 성향에, 한때 나의 꿈이기도 했던..
난곡 이야기김영종 저 청년사 | 2004년 03월지금은 사라져버린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난곡'을 사진과 소설의 복합적인 방식으로 보여주는 책. 작가가 몇 년에 걸쳐 담아낸 난곡의 풍경과 마을 사람들의 초상 사진들, 그리고 그 난곡에 살고 있는 구충씨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 어우러져, 난곡 문제를 '동시대 삶의 모습'으로 기록하고 증언하고 있다. 2004년 봄, 이 책의 출간과 함께 연 김영종씨의 첫 개인전에서는 전시회 시작을 축하하는 판소리가 벌어졌다. 불과 2~30분 안에 정신없이 웃다가, 코끝이 찡하며 눈물이 핑 돌다가, 또 다시 미소 짓게 했던, 잊을 수 없는 소리 한 판이었다. 난곡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묵묵히 담아낸 김영종씨의 사진과 글 속에서, 난곡이 사라져도 그 곳에 살던 사람들까지 사라..
손민호의 문학터치 2.0손민호 저 민음사 | 2009년 01월박민규, 이기호, 김애란, 윤성희, 한유주. 내게 있어 이 작가들의 공통점은 하나다. 바로 중앙일보에 연재되었던 '손민호의 문학터치' 기사를 통해 알게 되고, 읽고, 또 좋아하게 된 작가들이라는 것. 대학 시절, 밀란 쿤데라, 루이제 린저, 폴 오스터, 미셸 푸코 등 주로 해외 작가들의 작품을 즐겨 읽던 나는, 문학평론가 김미현 교수님의 '문학의 이해' 수업을 들으면서 스스로가 의외로 국내문학 작품을 별로 읽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후로 은희경, 전경린, 신경숙, 김영하, 박민규, 정이현 등을 찾아 읽었고, 내 방 책장에는 해외문학보다 국내문학 책들이 더 많아지기 시작했다. ‘문학의 이해’ 수업이 국내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다면..
키친김난주 역/요시모토 바나나 저 민음사 | 1999년 02월어렸을 때부터 나의 이상형은 '친구 같은 연인'이었다. 만날 때마다 긴장되고 설레고 가슴이 뛰는 그런 사람을 꿈꾼 적은 별로 없다. 아주 오랜 시간 알고 지내, 나에 관해서라면 무엇이든지 알고 있고 내 눈만 봐도 내가 어떤 상태인지 아는 사람, 마치 공기처럼, 늘 당연하다는 듯이 내 주변을 맴돌고 있어 처음에는 느끼지 못하더라도, 어느 순간 한없이 소중하게 다가와줄 사람.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시기에 나는 남에게 잘 기대지 못하는 성격 탓에 누구에게도 힘들다고 털어놓지 못했다. 그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누군가가 이런 나를 알고는 '괜찮아?'하고 툭 한마디 던져주기를 바랐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에서 '유이치'는, 힘들어하는 미카게의 앞에 마..
무중력증후군윤고은 저 한겨레출판 | 2008년 07월 '소외감'으로부터 도망치고자 뛰고 또 뛰는 1,000m 계주 같은 소설 | --- 정현경 (pencil@yes24.com) 1995년에 발매된 서태지와 아이들의 4집 앨범에 수록된 '시대유감'이라는 곡은 "오늘이 바로 두 개의 달이 떠오르는 밤이야"를 비롯한 몇 구절 때문에 가사가 없는 MR 버전으로 앨범에 수록되었다. 당시 심의에서 파악한 '두 개의 달이 떠오르는 밤'의 의미는 모든 것이 뒤집어지는 '세상의 전복'이자 기존 세력에 대한 '부정'과 '대항'이었다. 여기 두 개의 달로도 모자라 달이 다섯 개, 여섯 개로 증식하는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 있다. 2004년 대산대학문학상으로 등단한 80년생 신예작가 윤고은의 이 당돌한 소설 『무중력 증후군』은..